[한 달에 한 권] 마음을 쏘다, 활

Story/효성





열두 번째 ‘한 달에 한 권’ 연재를 시작합니다. 한 달에 한 권씩 추천해드리고 함께 읽다 보니 어느덧 1년이네요. 그간 소개해드린 열한 권 가운데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인 책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1년 치 ‘한 달에 한 권’ 서고를 채워줄 열두 번째 책의 제목은 <마음을 쏘다, 활>입니다. 오이겐 헤리겔(Eugen Herrigel)이라는 독일의 철학자가 1948년에 발표한 작품이에요.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 등 많은 예술가들이 이 책을 읽고 깊은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요. 책장을 넘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교보문고




 ‘나’를 겨냥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었던 오이겐 헤리겔은 일본 도호쿠제국 대학 초청으로 이 학교의 객원교수가 됩니다. 약 6년간 타국에서 철학사를 강의하는 동안, 그는 궁도(弓道)라 불리는 일본 전통 기예를 배우게 됩니다. 그 체험을 글로 정리한 결과물이 <마음을 쏘다, 활>입니다. 독일 철학자의 궁도 수련기인 것이죠. 원제는 <Zen in der Kunst des Bogenschießens>인데요. 직역하면 ‘궁도의 선(禪)’입니다. 


‘선’이라는 키워드가 암시하듯, 이 책이 얘기하는 궁도란 활쏘기 기술 숙련에만 국한되는 건 아닙니다. 저자는 “궁사는 본질적으로 말해서 자기 자신을 겨냥하며, 또 자기 자신을 명중시켜야 한다”라고 설명합니다. ‘나’를 겨냥하고 명중시키기 위한 의식의 수련, 이것이 바로 <마음을 쏘다, 활>이 다루는 궁도인 것이죠. 차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서문

01 선과 활쏘기

02 수업

03 올바른 호흡법

04 처음에 쉬우면 나중에 어렵다 

05 연습 또 연습 

06 스승과 제자 

07 대나무 잎에 쌓인 눈처럼

08 어둠 속의 표적 

09 시험 

10 명인의 경지 

11 기예 없는 기예의 길 

자아의 확장으로 가는 배움의 길 



1장부터 11장까지, 열한 단계로 이루어진 제목들은 마치 무협지 주인공의 고수되기 과정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자기 자신을 겨냥하고 명중시키기’, ‘선’ 같은 철학적 개념에 지레 질리지 말고, 무협지를 읽듯 열하나의 장을 천천히 따라가보시기를 권합니다. 


 

궁도 시범을 보이고 있는 서양인  사진: Wikimedia




 숨 쉬는 것이 아니라 ‘숨 쉬어지는’ 느낌 


주인공, 아니 저자의 손에 쥐어진 건 활입니다. 화살은 없습니다. 아직은 발사의 단계가 아니므로, 우선은 활시위를 당기는 연습부터 해야 합니다. “활시위를 당기기 위해서 온몸의 힘을 쏟아서는 안 되며", "단지 두 손만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 동인(動因)이 바로 호흡입니다. 그렇습니다. 첫 수업은 바로 호흡, 숨쉬기입니다. 


저자는 숨쉬기부터 벌써 힘들어합니다. 호흡이 번가하면, 활 쏘기는커녕 시위를 제대로 잡아당기는 일조차 무리입니다. 정말로 무리가 됐는지, 저자는 다리가 경직돼 고통을 호소하기까지 하는데요. 이때 스승이 차분히, 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합니다. 


“당신이 애를 쓴다는 사실, 그에 대해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 바로 문제입니다. 

다른 일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오직 숨쉬기에만 정신을 집중하십시오!” 


스승의 조언이 효력을 발휘하기까진 또다시 긴 시간이 걸리고···. 비로소 올바른 호흡법을 달성한 저자는 “때때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 ‘숨 쉬어진다’는 느낌”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대목에서 할리우드의 레이싱 영화 한 편이 떠오르는데요. <드리븐(Driven)>이라는 제목입니다. 내가 차를 운전하는(drive) 게 아니라, 차에 의해 내가 운전되는(driven) 레이서들의 경지를 뜻한다고 합니다. 의심의 여지없는 능동적 순간이지만, 그 능동의 주체는 어느 틈에 ‘나’도 잊고 ‘내가 차를 운전한다’라는 사실조차 잊고, 그야말로 무념무상의 상태로 ‘능동적 수동’의 열락(주이상스, Jouissance)을 맛보는 것이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하고 싶었던 일을 할 때,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일에 몰두합니다. 아니, 몰두’됩니다’. 이런 순간들이 곧 일상의 숨쉬기이자 활 쏘기가 아니겠는지요. 이런 순간들이 곧 우리로 하여금 미래라는 과녁을 향해 제대로 된 화살을 쏘도록 만들지 않겠는지요. 


 

궁도에 사용되는 과녁  사진: Wikipedia Japan




 목표에 대해, 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자의 손에 화살이 쥐어졌습니다. 이젠 발사 수업입니다. 스승은 “당신이 지금까지 배운 것은 모두 발사를 위한 준비”였음을 짚어줍니다. 기초 수업부터 쩔쩔맨 저자인데, 심화 수업에선 또 얼마나 막히게 될는지요. 역시나, “당신의 손이 잘 익은 밤송이 껍질처럼 저절로 벌어지지 않는다”라는 스승의 선문답식 지도에 제자는 또 한 번 난색을 표합니다. 결국 이런 말까지 해버리고 말죠. 


“왜냐하면 저는 결국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 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당기고 쏘기는 그런 목적을 위한 수단입니다. 

(···) 저는 그것을 없는 일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이에 대한 스승의 대답은 여전히 오리무중, 흐릿하기만 합니다. 


“(···) 목표를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서 화살을 발사하는 법을 배우는 데 

집착하면 할수록 목표를 맞추기는 더 어렵고, 또 발사법은 더 배워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순간의 저자는 부아가 난 나머지 스승이 발사 시범을 보이며 했었던 가르침을 잠시 잊은 모양입니다.(혹은 몰이해가 초래한 무의식적 경시였는지도요.) 스승은 분명히, 이렇게 일렀던 것입니다. 


“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면 될지를 궁리하지 마십시오. 

쏠 때는 쏘는 사람 자신도 모르게 쏘아야만 흔들림이 없습니다.” 


호흡법 수련 때고 그렇고, 스승은 테크닉이 아닌 ‘태도’에 대해 줄곧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자에게도, 이 책을 읽는 우리 독자들에게도 이 태도란 적잖이 낯선 것임을 인정해야 할 듯합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 정확한 목표를 정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열심으로 노력하라, 강렬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넌 할 수 있다(You can do it), 난 할 수 있다(I can do it), ···. 우리는 이처럼 목표지향적 교육관/인생관을 삶의 준칙 내지는 규범으로서 준수하고 있으니까요. 특히나 ‘모여서 일하는 곳’, 즉 회사(會社)의 경우라면 이런 준칙과 규범은 보다 철저히 엄수될 것입니다. 성과를, 실적을 명중시키지 못한다면 회사의 존립 근거는 사라지는 것이므로. 


활쏘기 스승의 지도는 우리의 실용적/실질적 태도와 배치되는 듯 여겨집니다. 스승은, 목표를 생각지 말라고 말합니다. 스승은, 해야 할 것과 어떻게 하면 될 지를 궁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스승은, 목표를 생각지 않을 때 목표를 쏘아 맞출 수 있고, 해야 할 것과 어떻게 하면 될지를 궁리하지 않을 때 그 해야 할 것과 어떻게 하면 될지가 자연히 궁사에게 습득된다고 이르고 있습니다. 즉, 스승은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달성’과 ‘명중’의 길로 안내하는 중입니다. 


 

내가 명중시켜야 할 단 하나의 과녁, 그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




 목표 지향적이 돼버린 나, 그 나를 쏘아 맞추는 수련 


이 글 서두에서도 밝혔듯, <마음을 쏘다, 활>의 활 쏘기는 “자기 자신을 겨냥하며, 또 자기 자신을 명중시켜야” 하는 수련입니다. 독자 여러분 각자는 아마도 극복하고 싶은 ‘자기 자신’을 지니고 있을 듯합니다. 그러한 ‘나’를 진득이 겨누고 쏘아 맞추려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 판이한 태도로의 전환이 요구되죠. 그러나 그 전환은 급격히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며,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십시오!”라는 활쏘기 스승의 충고대로 일 것입니다. 그렇게 서서히, ‘나’를, 목표 지향적이고 물질적이 돼버린 ‘나’를 과녁 삼아, 올바르게 호흡하고, 알맞게 시위를 당겨보는 것은 어떻겠는지요. 지금의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발사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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