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권] 호모 모빌리쿠스
“사람들이 ‘말하는 돌’을 손에 쥐고 바다 건너의 누군가와 대화하게 된다.”
중세시대 누군가의 예언이라고 합니다. 말하는 돌은 영어로 ‘cellular’라 불립니다. 손전화, 휴대전화, 휴대폰, 핸드폰 같은 이름들도 있습니다. 말을 떼니 음악을 들려주고 길을 찾아주며 옷을 사주고 야식을 주문해주기도 합니다. 손/핸드와 전화/폰이 세포조직처럼 달라붙은 느낌입니다. 손에 쥐거나 휴대하지 않으면, 손에 쥐고 휴대한 이들과 어울리는 데 제약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시대입니다. 이제는 돌만큼이나 흔해진 폰/스마트폰이 가져온 변화입니다. 변화는 시시각각 업데이트되고, 사회도 빠르게 재조직되어가는 듯합니다. 우리 손에 쥐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손을 잡고 이끄는 모양새입니다. 이번 ‘한 달에 한 권’ 코너에서 소개해드릴 <호모 모빌리쿠스>는 어느덧 익숙한 일상이 된 폰/스마트폰 생활을 낯선 현상으로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휴대전화 평균 통화시간이 유선전화보다 짧은 이유
‘호모 모빌리쿠스(Homo Mobilicus)’는 라틴어 신조어입니다. 책 서론에는 “휴대전화를 거는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모빌리스 텔레포니쿠스(Homo Mobilis Telefonicus)의 약어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휴대전화를 거는 인간’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데, 우선 차례를 살펴보겠습니다.
1부. 모바일 미디어의 사회·문화적 파장 01. 새로운 미디어 문화의 창발: 문화적 매체 기술로서의 휴대전화 02. 휴대전화 사용의 사회적 의미 2부. 새로운 언어 풍경과 정신의 변형 03.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언어 풍경 04. 휴대전화 접속자의 정신계 3부. 시간과 공간의 새로운 축조 05. 시간의 새로운 현상학 06. 새로운 공간성의 축조: 거리의 소멸과 공간의 가상화 |
정신계, 현상학, 공간성, 가상화 같은 낱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호모 모빌리쿠스, 즉 휴대전화를 거는 인간에 대한 저자(고려대학교 언어학과 김성도 교수)의 인문학적 해석이 전개되리라는 예상을 해볼 수 있습니다.
학술적 성격이 강한 434쪽 분량을 읽어내기가 일반 독자로서는 도전일 수 있겠습니다. 앞표지 ‘모바일 미디어의 문화생태학’이라는 부제, 뒷표지 ‘휴대전화에 대한 생태학적 사유’라는 소개 문구에서부터 어려움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막상 읽기 시작하면 다른 인상을 받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몇 번쯤 알림음과 벨소리를 낼 휴대전화라는 것이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특히 2부 ‘새로운 언어 풍경과 정신의 변형’이 그러한 관점을 갖게 해줄 것입니다.
휴대전화가 가능하게 한 커뮤니케이션의 순간성에 열광하는 사람들조차도 즉각적 표현의 가능성과 충동이 상상력의 자리를 몰아내고, 잡담이 진정한 사유의 교환을 대신할 수 있는 위험성이 상존함을 인정한다. (중략) 휴대전화는 부재가 갖는 인내력과 사랑의 근원적 힘에 대한 의미를 학습하는 법을 상실하게 만들 수도 있다. (187쪽) 통계에 의하면 휴대전화의 평균 통화시간은 약 1분 이내로 유선전화의 평균 통화시간 4분에 비해서 훨씬 더 짧다. 휴대전화 통화량의 50퍼센트 정도가 45초 미만의 통화량이라는 통계 보고도 있다. (중략) 유목민적 커뮤니케이션은 신속하고 효율적이기를 원한다. 이동 커뮤니케이션은 무엇보다 도구적이며, 실용적이고, 대부분의 경우 기능적이다. (중략) 간결성이 묘사에 우선하고, 표현보다 정보가 우선시된다. (190~191쪽) |
본문에서 발췌한 위 내용(지적)에 공감하시는지요. 휴대전화 평균 통화시간이 유선전화의 그것보다 1/4이라는 통계가 흥미롭습니다.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적이며, 실용적이고, 대부분의 경우 기능적”인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자료 아닐까요. 이 책의 발행 연도(2008년)를 고려한다면 해당 통계는 적어도 9년 전 자료일 텐데, 그렇다면 그 이후는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본문에는 “고전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향수”로서 “교감적 기능의 전화통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언급되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의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일상은 책의 전망대로일까요?
카메라폰 일상의 양면
2부 말미에는 이른바 카메라폰과 우리 일상의 관계를 주목한 내용도 나옵니다. 카메라폰으로 찍은 사진을 실시간 공유하는 행위가 이렇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주체가 소재하고 있는 공간적 여건과 상황이 커뮤니케이션 내용으로 변형되는 것”, 즉 “가상적인 공현존성이 공간의 내용으로 변형되는 것”.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양면이 존재한다는 부연설명도 참고해봐야겠습니다.
사용자들의 강렬한 경험과 감각을 소통하려는 소명을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표현성이 정보성에 우선시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사실이다. (249쪽) 사진 촬영은 더 이상 가치 있는 순간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즉시적 공유를 목적으로 한 순간의 돌발적 포착인 것이다. (190~191쪽) |
윗글의 사례로 식당 인증샷 이벤트에 참여하는 행위를 들 수 있겠습니다. 주문한 음식을 카메라폰으로 찍어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공유하면 즉석에서 할인쿠폰을 받는 방식 말입니다. 손님들로 하여금 특정 식당에 왔다는 경험과 맛있게 먹었다는 감각을 표현하도록 기획한 이벤트입니다. 혜택이 즉각적으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즉시적 공유를 목적으로 한 순간의 돌발적 포착”에 해당합니다. 카메라가 내장된 스마트폰 없이는 애초에 기획이 불가능한 이벤트임은 물론이겠습니다.
새삼 느끼는 휴대전화의 무게감
<호모 모빌리쿠스>를 읽는 동안 새삼 휴대전화(폰/스마트폰)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새 휴대전화를 구입하면 ‘개통’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말 그대로 ‘열려서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뒤집어보면 개통 서비스를 받기 전까지 우리-호모 모빌리쿠스는 ‘닫혀서 통하지 못하는’ 상태, 즉 불통입니다. 또, 도시와 멀어질수록(자연과 가까워질수록) 개통 신호가 희미해집니다. 이럴 때 보통 사용하는 표현이 ‘안 터진다’입니다. 개통 서비스망 안에서만 ‘터지는’ 호모 모빌리쿠스의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에 대하여 무겁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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