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를 통해서 본 세속에 갇혀버린 나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속물근성을 치면 "금전이나 명예를 최고로 치고 눈앞의 이익에만 관심을 가지는 생각이나 성질"이라고 나옵니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서 6펜스가 가지는 의미는 속물성입니다. 그리고 달이 뜻하는 바는 속물성과 대립하는 의미인데, 이게 뜻하는 바는 뭘까요?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서 6펜스는 속물성을 상징한다>
흔히들 부정적으로 느끼는 속물성에 반대되는 단어가 왜 바로 생각나지 않는 걸까요. 왜냐하면 저 또한 사회 '속물'들 중의 속물이기 때문입니다. 속물성에 이미 젖은 사회 구성원이 세속의 테두리를 벗어난 세계의 언어를 현실에서 떠오르자니 머릿속이 새까매지는군요.
"난 그려야 해요." 그는 되뇌었다.
"잘해봐야 삼류 이상은 되지 못한다고 해 봐요.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다른 분야에서는 별로 뛰어나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아요. 그저 보통만 되면 안락하게 살 수 있지요. 하지만 화가는 다릅니다."
"이런 맹추 같으니라고."
"제가 왜 맹추입니까? 분명한 사실(합리성)을 말해주는 게 맹추란 말인가요?"
"제기랄,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치고 못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본능)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는다고."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中
영화 타이타닉에서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들에게 사회의 안정, 명예, 권력, 정의, 도덕, 양심 따위를 운운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적어도 영화 속 장면에서는 아이와 여자들을 먼저 구명보트에 태우기라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처자식 생계도 내팽개치며 그림을 그리겠다고 홀연 떠납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보편적인 관습이나 도덕적 양심이 아니라 철저히 내면의 욕망에 따라 행동합니다. 주변의 추측대로 바람이 나서도 아닙니다. 대개 마흔일곱의 가장이라면 틀에 박힌 중산층 생활의 궤도에 편안하게 정착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일탈한 까닭은 단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아내 에이미를 속물의 전형으로밖에 생각하지 않고, 그에게 집착하는 블란치라는 여자를 죽음으로 내몰기도 합니다. 그의 천재성을 인정해주고 앞가림을 배려해 준 블란치의 남편 더크 스트로브를 남자로서도 화가로서도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시킵니다.
찰스 스트릭 핸드가 속세를 일탈하면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난관은 ‘자연의 거대함 앞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왜소함’과 비견할 수 있으며, 거기에 반해 대자연이 보여 주는 경이로움은 그가 추구하는 예술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케팅 관련 서적에서 주로 인용되는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은 하나의 욕구가 충족되면 위계 상 다음 단계에 있는 다른 욕구가 나타나서 그 충족을 요구하는 식으로 체계를 이룬다는 이론입니다.
1단계 욕구는 생리욕(식욕, 성욕 등)이며 이것이 충족되어 3단계가 더 진전되면 자기를 계속 발전하게 하고자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욕구(5단계로 최상위에 위치)를 가집니다. 다른 욕구와 달리 욕구가 충족될수록 더욱 증대되는 경향을 보여 성장 욕구라고 하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알고 이해하려는 인지 욕구나 심미 욕구 등이 여기에 포함되는데, 소설 속 찰스 스트릭랜드가 추구한 욕구가 자신이 바라보는 자연에 대한 심미안을 예술로 표출하려는 '심미 욕구'에 해당합니다. 그가 회화를 통해 지향한 심미 욕구의 과정을 전달 해주는 작중 화자인 나는 찰스의 무도덕성에 치를 떨면서도 그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개성과 천재성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심지어 ‘위대한 인간이었다’라고 까지 표현합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사상으로 미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만 매긴 예술지상주의를 '유미주의'라고 부릅니다. 작가 서머싯 몸은 이 소설의 전신인 '인간의 굴레'에서 "예술이란 영리한 놈들이 생각해 낸 도피구에 지나지 않아. 음식과 육욕에 모자람이 없자 삶의 따분함을 잊어버리려고 생각해 낸 거야."라고 화자를 통해 말했습니다.
달과 6펜스에서 6펜스와 대비되는 '달'은 무엇을 암시하는 걸까요. 가보지 못한 곳의 동경, 비물질적 가치, 타인의 감상적인 친절과 동정에 경멸감을 느끼는 더 근본적인 윤리관, 세속 사회의 안락과 인습 그리고 평판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태도, 자기 몸의 병쯤이야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 예술을 향한 속죄양,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 자연의 원시성. 문명사회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발 앞에 떨어진 100원짜리 동전(6펜스)만을 줍느라, 밤하늘의 달빛은 쳐다볼 수가 없습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의 부품처럼 기능하는 속물(Default Material)들은 인간 세계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갈구합니다. 하지만 일상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 삶에 스스로 종속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스트릭랜드는 작가 서머싯 몸이 화가 '폴 고갱'을 부분 모델로 삼아 새로 가공한 소설 속의 인물상입니다. 그는 소설 속에서 까칠한 성격에 투박한 말투, 그리고 난폭함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먼 자아의 욕구를 자신의 삶에서 실현하는 그의 모습은 사회에 종속된 채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우리’에게 동경과 만족을 줍니다. 현대 사회에서 소설 속의 스트릭랜드와 같은 예술적 재능이 따라 주면 살아 생전에 물질과 사회적 경외심은 곧 따라오겠죠. 현실 속 사회가 그의 재능을 알아준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알아준다는 전제란, 사회가 그의 세계관에 '세속화' 되는 과정입니다. 남들이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대로 세상을 바라보게끔 만들 수 있는 재능, 예술가의 도피구가 대중에게 소통되는 순간입니다. 결국 대중들이 편드는 자들이 꾸민 세계가 우리가 부르는 현실이라고 감히 단정합니다.
"세상을 살만한 장소로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도 우선 필요한 일은 인간의 불가피한 이기성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네. 자넨 타인에게 이기적이 아니기를 요구하는데, 그건 자네의 욕구만을 위해 타인더러 자신의 욕망을 희생하라고 하는 모순된 주장이야. 타인이 왜 그래야 하나. 모든 개인이 세상에 살면서 자기 자신을 위한다는 사실을 자네가 받아들여야 자넨 다른 사람들에게 덜 요구할 수 있어. 다른 사람들에게 덜 실망할 거고, 다른 사람들을 더 자비롭게 바라볼 수 있어. 사람은 인생에 단 한 가지를 추구하지. 그건 자기 자신의 '쾌락'이야."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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