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남 썸녀와 함께 보면 좋을 ‘봄’ 같은 영화 Best 5
올 베를린영화제 참석 차 베를린에서 머무는 중, 그 문화의 도시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60대 초 여성 지인이 들려준 한마디다. 한국의 선남선녀들은 만나자마자 두 번째 만남쯤 이미 어두컴컴한 영화관을 찾아 그들만의 은밀한 시간을 갖곤 한다지만, 독일의 젊은 친구들은 어지간히 친하지 않으면 그러는 법이 좀처럼 없다는 것 아닌가. 그 선남선녀들 중 일정 수는, 전격적 애인은 아니어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남녀들인 ‘썸남썸녀’ 내지 ‘썸씽커플’들 임은 두말할 나위 없을 듯. 하튼 그 평범할 수 있는 견해가 2010년대를 거치며 전개되고 있는 한국 영화의 기념비적 활황을 설명해줄 수 있는 동인 중 하나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인구 5천여만의 나라에서, 1천만 영화가 1년도 채 안 걸려 두 편이나 출현하는 대사건이 벌어질 수 있겠는가!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3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해 한국 영화산업은 관객 수 및 매출액 모두 사상 최대 호황을 기록했다. 총 관객 수 2억 1,332만 명으로 전년 대비 약 9% 증가했다. 인구 1인당 연 평균 관람횟수는 4.9회인 아이슬란드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인 4.25회에 달했다. 영화산업 총 매출은 1조 8,839억 원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거둔 <겨울왕국>의 기념비적 성공도 그 호황의 맥락에서 파악․접근돼야 한다. 외국영화로는 <아바타>에 이어 역대 두 번째이며, 한국영화까지 포함하면 11번째로 ‘1천만 영화 클럽’에 가입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썸남 썸녀와 함께 보면 좋을 영화 그 첫번째, <겨울왕국>
<겨울왕국>은 그야말로 썸남썸녀라면 놓치기 아까운 흥미로운 문제작이다. 최고 ‘절친’ 같은 자매 엘사와 안나. 언니 엘사에게 동생에게조차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 있으니, 손 대기만 하면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신비로운 힘이 그것이다. 엘사는 통제할 수 없는 그 괴력이 두려워 왕국을 떠나고, 얼어버린 겨울왕국의 저주를 풀기 위해 안나는 언니를 찾아 환상적인 여정을 떠난다.
그 여정의 과정과 결과가 그 간 보아온 대다수 애니메이션은 말할 것 없고, 여느 극 실사 영화들과도 판이하게 다르다. 흔히 아이들이나 보는 오락물인 줄 여겼던 만화 영화에 대한 편견을 여지없이 날려버리기 모자람 없다. 엘사와 안나 두 공주는 백마 탄 왕자의 도움이나 구원을 기대하지 않으며, 남자의 키스는 더 이상 문제 해결의 열쇠가 아니다. 귀엽긴 하되 절세미모들도 아니다. 그들은 그 간의 디즈니월드에서 좀처럼 목격할 수 없었던 독립적 여전사들로, 스스로 난국을 헤쳐 나가며 끝내는 곤경을 극복해낸다. '진정한 사랑'도 그저 이성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선함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한 대 파격이다.
하지만 두 여전사들이 펼치는 모험극에서 ‘착한 남자’ 크리스토퍼의 활약을 무시할 순 없다. 가부장중심적 영화에서와 같은 주도적 역할은 아니어도 조력자로서 제몫은 톡톡히 수행한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안나의 여정은 실패했거나, 성공하더라도 훨씬 더 큰 애를 먹어야 했을 게 틀림없다. 안나와 크리스토프야말로 영락없는 썸남썸녀다. 이른바 ‘오픈 콜라보레이션’의 사례로서도 손색없다. 영화에선 끝내 나오진 않아도 두 남녀가 진정한 애인 관계로 발전해 해피엔딩을 맞이하리라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터. 비틀즈의 ‘렛 잇 비’를 벤치마킹해 빚어냈을 법한 주제곡 ‘렛 잇 고’가 <겨울왕국>의 전부만은 아닌 것이다.
<겨울왕국>과는 달리 이 두 영화는 썸남썸녀에게 추천하기 다소 주저되긴 한다. 허나 사람살이에 대한 어떤 통찰 내지 성찰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권하고픈 영화들이다. 언뜻 더 이상 대조적일 수 없을 색깔로 다가서나 그 속내에서는 간과돼선 안 될 공통점이 관류하는 <우아한 거짓말>과 <몬스터>다. 인간이기에 살며 겪을 수밖에 없는 치명적 ‘상처’가 으뜸 공통점이다. 하지만 트라우마적 그 상처가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두 영화는 확연히 갈라선다. 전자는 그 극복에 방점을 찍는다는 점에서 대안적․전향적인 반면, 후자는 그 원인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과거(지향)적이거나 퇴행적이랄까.
썸남 썸녀와 함께 보면 좋을 영화 그 두번째, <우아한 거짓말>
<우아한 거짓말>은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과 감독 이한이 또 한 번 호흡을 맞춰 빚어낸 걸작 소품이다. 어느 날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으로 이 세상을 버린 여중생 천지(김향기 분)의 ‘비밀’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스릴러 성 휴먼 드라마. 천지의 엄마 현숙(김희애)과 언니 만지(고아성)는 한 꺼풀 한 꺼풀 드러나는 그 비밀에 직면하며 당황하고 충격에 휩싸인다. 슬픔도 너무 크면 눈물조차 흘릴 수 없다고 했든가, 그들은 절망에 빠지기는커녕 좀처럼 오열조차 않는다. 그것이 먼저 저 세상 사람이 된 천지의 바람일 테기에. 그래서일까 두세 차례밖에 등장하지 않는 오열 앞에서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완득이>도 그랬듯 영화 <우아한 거짓말>은, 원작과 영화가 얼마나 친화적일 수 있는지 완벽하게 증거한다. 작가 김려령은 ‘작가의 말’에 소설의 탄생 배경을 고백한다. 사는 게 하도 버거워 자신도 중학교 적 “…어린 생을 놓아버렸을지 모”른다고. “…모두 너를 위해서라는 우아한 말이 아닌”, 그저 “잘 지내니?”라는 이모의 “진심이 담긴 저 평범한 안부 인사가 준비해두었던 두꺼운 줄로부터” 자신을 지켜주었다고. 그러면서 간청한다. 부디 “어떤 일이 있어도 미리 생을 내려놓지 말라고, 생명 다할 때까지 살라고. 그리고 진심을 담아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고 계시지요?”, 라고.
감독은 원작자의 진심을 전하는데 100%, 아니 그 이상으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 최선에 걸맞는 큰 성공을 거둔다. 감독은 이런 유의 영화가 빠지기 마련인 노선을 걷지 않는다. 최루는커녕 그 흔한 감상으로도 흐르지 않는다. 조화 아닌 충돌적 편집이나 대위법적 음악 효과 등으로 원작자의 절제를 고스란히 영상과 사운드로 옮긴다. 그러면서도 감독은 잊지 않는다, 소설과 영화는 엄연히 다른 매체라는 사실을. 소설과는 달리 몇몇 지점에서 캐릭터들이 자신들의 감정을 크고 작은 강도로 분출시키는 것을 허용하는 것! 그럼으로써 감독은 원작을 충실히 영상으로 전환시키는데 그치질 않고, 영화 매체 고유의 맛을 전하는데 성공한다. ‘문학의 영화화’의 최적의 모델을 구현하면서.
무엇보다 최상의 성격화 및 연기를 통해서다. 20여년 만에 스크린 연기에 도전한 김희애는 현숙의 현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희애 아닌 현숙은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최강의 우아함을 견지하면서도 억척어멈의 전형을 창조해낸 입체적 어머니 상이랄까. 현숙은 <마더>의 김혜자, <변호인>의 김영애 등의 연장선상에 놓이나, 그 이미지․분위기 등은 또 다르다. 한층 더 매혹적이랄까.
고아성은 어떤가. 지난 3․1절 진행한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이 역설했듯 고아성은 <설국열차>에서 요나의 분신이었다. 허나 여전히 그 간의 조연적 이미지에 머물렀다. 그 어린 여걸은 비로소 <우아한 거짓말>에서 당당한 주연으로 우뚝 선다. 만지의 분신으로. 현숙, 만지, 천지, 그리고 천지의 친구 화연(김유정)에 이르는 주연만이 아니다. 그 못잖은 감동이 천지의 또 다른 친구 미라와 미라를 연기한 유연미, 만지의 절친 미란과 미란을 연기한 천우희 등 조연들의 성격화 및 연기에서도 뿜어 나온다. 비중은 작아도 주연들 못잖은 인상을 안겨준다.
썸남 썸녀와 함께 보면 좋을 영화 그 세번째, <몬스터>
<우아한 거짓말>에 비하면 <몬스터>는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만다. 어딘가 바보스럽지만 억척스럽기는 현숙 버금가는 일명 ‘미친 년’ 복순(김고은)과, 사이코패스라는 말로는 부족한 냉혈 살인마 태수(이민기) 두 캐릭터를 축으로 전개되는 스릴러 드라마.
<오싹한 연애>로 눈길을 끌었던 황인호 감독은 유감스럽게도 스릴러로서 의도한 만큼의 긴장감을 전하는데 실패한다. 스릴러가 아님에도 웬만한 스릴러 이상의 긴장감을 유지시킨 <우아한 거짓말>과 비교하면, 그 실패는 더욱 두드러진다. 영화 평론가 정지욱이 지적했듯, “피와 살점을 흩뿌린다고 스릴러가 되지는 않는다.” 스토리와 캐릭터가 지나치게 산만하다. 때문에 내러티브의 개연성이 부족하다. 두 중심인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외적 사건들에 치중하느라, 캐릭터의 내면 묘사 달리 말해 성격화도 허하다.
절반의 성공은 김고은-이민기 두 배우의 연기 몫이다. 기존의 착한 남자 이미지에서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최민식)에 견줄만한 희대의 악당으로 변신한 이민기도 그렇지만, 소녀와 숙녀 사이의 은교에서 중성적 이미지의 복순으로 탈바꿈한 김고은은 단연 주목감이다. 이병헌, 전도연 등과 함께 출연 중인 <협녀: 칼의 기억>(박흥식)이 기다려지는 것도 무엇보다 김고은의 변신 때문이다. 정지욱도 인정하듯, 두 배우의 “광기 어린 눈빛의 연기는 탁월”한 편이다.
썸남 썸녀와 함께 보면 좋을 영화 그 네번째, <관능의 법칙>
권칠인 감독의 <관능의 법칙>은 썸남썸녀의 미래 이야기라는 점에서 추천할 만하다. “꽃보다 화려하게 만개하는 절정의 40대, 지금이 어느 때보다 제일 잘 나간다고 믿는 세 친구들! 나름의 상처와 고민을 안고 살아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뻔뻔하게 밝히고 화끈하게 즐기며 일도, 사랑도, 섹스도 뜨겁게 하고 싶은 그녀들의 솔직한 이야기”. 20대 어린 남자(이재윤)와 주저하면서도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는 골드미스 신혜(엄정화)와 성적으로 무능하기 짝이 없는 남편(이성민)을 밤마다 들들볶으나 한 번도 재미를 못 보는 도발 주부 미연(문소리), 자상한 목수(이경영)와 그 어느 젊은 연인들 부럽지 않은, 달콤한 연애를 하는 싱글맘 해영(조민수)이 그녀들이다.
이 영화를 단지 그녀들의 이야기만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아닐 듯. 비록 성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지긴 해도 그들은 우리 모두의 가슴 저린 초상화라 일컫기 모자람 없다. 세월은 그저 흐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연륜도 축적시키는 법, 영화 속 세 여인들은 파트너인 세 남자들을 압도하면서 캐릭터 면에서나 연기적으로나 한국 중년 여성의 건재 내지 상승세를 뽐낸다. 시종 이야기를 리드하면서. 혹 이 영화를 보고 못 마땅해 할지도 모를 20대 청춘들도 나이 들어 그들 나이가 되면, 그 여섯 남녀를 추억하며 씩 웃게 되지 않을까.
썸남 썸녀와 함께 보면 좋을 영화 그 마지막, <그녀에게>
한편 스페인의 국보급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는 썸남썸녀라면 놓쳐서는 안 될, 필견의 문제적 러브 스토리다. “이런 사랑도 있다!”는 것을 새삼 환기시키며, 끝내는 어긋나는 두 쌍의 남녀를 에워싸고 펼쳐지는 치명적 멜로드라마. 물론 코마 상태의 발레리나 알리샤를 향한 베니흐노의 일방적 ‘헌신’이 과연 사랑일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개봉 당시 일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그랬듯, 현실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할 법한 알리샤의 임신을 두고 “성폭행”, “강간”, 운운하며 어떻게 그런 비도덕적 행위를 미화할 수 있냐며 분노할 수도 있다. 못마땅해 거품 물며 영화를, 나아가 감독을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화, 운운은 영화나 감독을 오독한 데서 비롯된 오해일 공산이 크다. 감독은 강요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강요는커녕 편들기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베니흐노의 헌신 또한 일방적이라고 말할 수만도 없다. 비록 알리샤를 향한 애정이 관음증적 관심에서 시작됐다 할지라도, 그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알리샤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기에 하는 말이다.
그것과 연관해 우리 말 제목 ‘그녀에게’나 영어 제목 ‘Talk to her’가 아니라 스페인어 원제 ‘Hable con ella’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To처럼 ‘에게’라는 일방성이 아니라 con처럼 ‘함께’, ‘더불어’라는 쌍방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원제는 극 중에서 베니흐노가, 투우 도중 벌어진 사고로 인해 알리샤처럼 식물인간이 돼 누워있는 리디아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만보고 있는 영화의 또 다른 남자 주인공 마르코에게 들려주는 진심어린 조언이다. “그녀와 함께 대화를 나누라”는. 그것은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여러 분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있냐는 감독의 물음 내지 권유.
그렇다면 베니흐노의 행위를 알리샤를 되살리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이요 사랑나눔으로 볼 수는 없을까. 남자로서의 성욕을 채우고자 하는 파렴치한 성폭행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가. 더욱이 베니흐노는 그 행위의 현실적 대가를 목숨으로 치르지 않는가. 그런 그를 그 누가 단죄하고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몰염치한 인간들로 득실거리는 이 세상에서? 그 점에서 마르코와 알리샤의 사랑 가능성을 암시하며 끝맺음하는 영화의 결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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