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아카데미 화제작 <드라이브 마이 카>의 3가지 비밀
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이하 ‘2022 오스카’)이 지난달 28일(한국 시간) 열렸습니다. 이번 시상식은 한 가지 논란, 또 한 가지 숙제, 그리고 한 편의 화제작을 낳았던 것 같은데요. 먼저, <킹 리차드>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윌 스미스의 시상자 폭행 논란이 있었죠. 수많은 밈(meme)을 제조해낸 이 사건. 2022 오스카는 끝났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네요.
주요 부문인 작품상•감독상 포함 총 12개 부문 후보였던(감독상 1개 부문 수상) <파워 오브 도그>는 숙제를 남겼습니다. 이 영화는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인데요. 즉, 스트리밍 서비스 가입자들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달리 말해 모든 관객에게 열려 있는 영화는 아니란 의미죠.
넷플릭스 미가입자가 오스카 2022 이후 <파워 오브 도그>를 보고 싶어 한다면 당연히 넷플릭스에 가입해야겠죠. 이런 상황을 ‘영화제가 특정 OTT 채널의 마케팅을 해준 셈’이라고 해석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중화된 만큼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니라는 입장도 존재합니다. 갑론을박과는 별개로, 어쨌든 전 세계 영화제들은 ‘영화’의 범위 규정에 관해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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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이후 아카데미가 주목한 또 한 편의 아시아 영화
앞서 이번 오스카 2022가 한 편의 화제작을 낳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바로 <드라이브 마이 카>입니다. 작품상•감독상•각색상•외국어영화상 4개 부문 후보작이었죠. 외국어영화상 1개 부문 수상에 그쳤지만, 2020년 92회 아카데미 4관왕(작품상•감독상•각본상•외국어영화상 수상) <기생충> 이후 또 한 번 아시아 영화의 위상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스트리밍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입니다. 코로나 19 시국임에도 이 작품을 보러 극장에 가는 관객들이 많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12월 말 개봉 후 3개월여 만에 7만 명 이상의 관객 수를 기록했죠. 상영 시간이 세 시간에 달하는 예술 영화로서는 제법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벨문학상 유력 수상자로 거론되는 세계적인 작가죠. 원작자의 팬들이 이 영화를 궁금해하지 않았을 리 없을 텐데요. 단편소설을 어떻게 179분 분량의 영화로 각색하였는가, 하는 호기심을 안고 극장으로 향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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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고뇌가 느껴지는 ‘소설→영화’ 변화 포인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와 크게 세 가지 지점에서 다릅니다. 이걸 알고 나면 영화를 좀더 흥미롭게 바라보실 수 있을 거예요. <드라이브 마이 카>를 연출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해외 인터뷰와 함께 세 가지 비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❶ ‘카’의 브랜드는 같지만 모델과 색상이 틀린 이유
원작을 읽으신 분들은 극장에서 ‘어? 노란색이 아니라 빨간색이네?’ 하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소설과 영화 모두 1992년 양산된 사브 900 터보(Saab 900 Turbo) 차량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어요. 소설에선 노란색 컨버터블(convertible, 천장 개폐식 차량), 영화에선 빨간색 일반 모델(해치백)이거든요.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도 원작처럼 자동차 내부에서의 다이얼로그(등장인물 두 명의 대화) 장면이 많은데, 컨버터블 차량은 외부 소음 때문에 촬영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감독의 말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영화 작업 초기부터 염두에 뒀던 게 있어요. 컨버터블은 바람 소리 같은 소음 문제 때문에 영화 촬영용으로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죠. 그렇긴 해도 최대한 원작에 맞춰서 노란색 사브 차량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 와중에 차량 섭외를 담당하던 스태프가 빨간색 사브를 몰고 온 거예요. 그걸 보고 ‘오호, 괜찮은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원작 소설 속 자동차가 발산하던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판단했어요.”
_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CNN style》 인터뷰 발췌 번역
❷ 원작과 아주 다른 줄거리(feat. 무라카미 하루키의 반응)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줄거리는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직접 각본을 쓴 감독 스스로도 “이야기를 완전히 다시 썼다”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스포일러가 될 테니 자세한 얘기는 삼가겠습니다.)
주인공의 회상 장면이 많은 원작과 달리,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됩니다. 또 주요 캐릭터들의 극적 역할과 지향점도 원작과 크게 다르고, 원작엔 없던 캐릭터들과 새로운 플롯이 추가되기도 했어요. 이쯤 되면 이유가 궁금해지는데요. 왜 이렇게까지 각색을 한 걸까요. 그리고 원작자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영화화는 저와 함께 일하는 프로듀서의 아이디어였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장편소설이 영화화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단편소설의 영화화는 몇 편 실현됐었죠. <버닝>이나 <하나레이 베이>처럼. 프로듀서에게서 이 얘기를 듣고 저는 「드라이브 마이 카」를 제안했어요. 8년 전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영화화해보고 싶은 몇 가지 모티프(motif)들을 발견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작업을 시작하려고 보니, 이야기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단편소설 그대로만으로는 두 시간 넘는 장편영화를 채우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거죠. 그리고, 원작의 결말은 주요 캐릭터 두 사람의 대화 도중 끝나는 형식인데, 이 부분도 극영화에 맞춰서 바꿔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
<드라이브 마이 카>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가 상당히 만족하는 것 같아요. 시사회 때 참석하진 않았지만, 자신이 사는 지역의 극장에서 관람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매우 좋아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부분이 자기가 쓴 원작의 내용인지, 또 어떤 부분이 아닌지 헷갈렸다고도 했습니다.
_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The Wrap》 인터뷰 발췌 번역
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수어’가 등장한 이유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원작 소설에는 없던 극적 장치가 중요하게 쓰입니다. 바로 ‘수어(sign language)’죠. 음성 대사 없이 수화로만 이루어지는 대화 장면들도 많습니다. 수화로만 소통하는 캐릭터 ‘이유나’ 역의 배우 박유림은 이 영화를 계기로 큰 주목을 받기도 했어요. 이쯤에서 감독의 말을 다시 들어봐야겠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 속 ‘수화’는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요.
“우리가 말을 할 때는, 보통은 ‘들은 것’에 관하여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대화를 하려면 상대의 음성을 듣고 이해해야 하잖아요. 하지만, 음성뿐 아니라 서로의 몸짓언어(보디랭귀지)를 통해서도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몸의 움직임으로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건 어쩌면 더 직접적인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소통 수단이랄까요.”
_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TIME》 인터뷰 발췌 번역
그렇군요.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왜 ‘수어’가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그토록 중요하게 쓰였는지 짐작이 갑니다. 이 영화는 결국 진정한 소통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말과 말의 오고 감만큼 몸짓언어 또한 시간을 들여 주고받을 수 있다면, 각자의 삶과 입장이 달라도 화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 속에서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 수화 등 다채로운 ‘언어’로 소통하는 등장인물들처럼요. 올봄에는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을 진솔히 오갈 수 있는 내면의 ‘카’ 한 대씩 장만해보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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