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인의 한 수] 절벽을 가로지를 새 계단을 만들다

2015.06.12 08:00





경남 통영에 위치한 작은 섬 ‘사량도’에서 태어난 김의곤 명장. 지리망산과 푸른 바다가 펼쳐진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1986년 효성중공업 창원공장 공작부에 입사했습니다. 명절이 되어 고향을 찾을 때면, 동네 어른들은 부러운 듯 그의 손을 꼭 잡고 “의곤아, 니는 우찌 그리 좋은 회사에 들어갔노?”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간 어머니를 보며 효성 직원으로 일한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김의곤 대한민국 명장



그렇게 평범한 직장 생활을 이어가던 그에게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한국공업표준협회에서 분임장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에서였습니다. 자신만의 용어로 발표한 내용들이 참석자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죠. 그날 이후 그동안 쌓은 경험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전문 교육을 받아 이론을 갖추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늦은 나이에 학교로 돌아가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기란 쉽지 않았기에 실천에 옮기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김의곤 대한민국 명장



“학교를 다니면 시간이 없으니 관리해온 인맥이 끊길 것 같았죠. 학비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요. ‘학업 내용이 너무 어려우면 우짜노?’ 하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주변에서도 ‘그 나이에 배워서 뭐 할 거냐’, ‘그냥 회사나 편하게 다니지 왜 사서 고생하려 하느냐’며 만류했지요.”





그는 안주하는 대신 꿈을 좇는 길을 택했습니다.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수학 공식과 영어 문법을 물어가며 공부한 끝에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드디어 대학교에 발을 디뎠습니다. 낮에는 회사로, 밤에는 학교로, 주말에는 도서관으로 향하는 생활이 몇 년간 계속됐습니다. 빵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부지기수였고요. 자신을 ‘큰형님’이라 부르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자정이 넘도록 주경야독했던 그는 기계공학 학사 학위를 받아든 순간의 기쁨을 잊을 수 없습니다.


“50여 년을 담아뒀던 응어리가 풀리는 순간이었어요. 가슴이 벅차고 감격스러웠습니다. 도전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에 학교에서 배운 이론이 더해지니 공장 내부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공정 개선을 위해 사용하는 지그, 공구의 2D, 3D 도면을 직접 그려 제작해 현장에 투입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활용하는 공정 개선 과정이 그에겐 무척이나 흥미로웠습니다.



김의곤 대한민국 명장

<효성 마포 본사에서 임직원들에게 강연 중인 김의곤 명장>



“처음 당구를 배울 때 천장에 당구대가 어른거리곤 하잖아요. 저에게 ‘개선 활동’이 그랬습니다. 공정에서 결점이 보이면 그 부분을 카메라로 찍어서 책상 옆에 붙여놓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스케치하고 그랬지요. 집에 오면 천장에 도면이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의 남다른 열정과 노력은 ‘수상’이라는 값진 선물로 되돌아왔습니다. 현장 사원 최초로 2011년 ‘효성그룹 체인지 리더’ 개인 부문 금상을 받은 데 이어 ‘2012년 창원시 올해의 최우수 근로인’, ‘경상남도 최고 장인’, ‘고용노동부 선정 우수숙련기술자’,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를 수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고용노동부가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한 근로자를 대상으로 포상하는 석탑산업훈장 수훈에도 도전했습니다. 고용노동부 창원지청 담당자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의 감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되던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의곤 대한민국 명장



“대한민국 명장 선정 통보를 받은 날 집에 오는 길에 무척 기뻐서 큰 소리로 ‘야! 김의곤 대한민국 명장이다!’ 하고 소리를 지르고, 혼자 춤도 추고 그랬습니다. 남들이 쳐다봐도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기뻤습니다.”


항상 거대한 절벽이 눈앞에 놓인 것만 같았다는 김의곤 명장. 어떻게 하면 절벽을 넘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니 절벽에 계단이 놓였고, 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꿈꾸던 이상과 바라던 세상이 보였다고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며 흘러가는 세월에 삶을 맡길 것인가, 변화하는 자가 되어 살아남을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일 것입니다. 효성그룹 백년대계를 위해 꼭 필요한 마중물이 되고 싶다는 그의 눈빛이 청년처럼 반짝였습니다. 



김의곤 명장의 행복 메시지



1. 품질을 살아 있는 생명 다루듯이 하라


“품질이 나쁘면 제품의 생명력이 떨어지지요. 회사 명성에도 치명적입니다. 그러니 제품 품질을 소중히 생각하고, ‘살아 있는 생명’이라 여기며 일해야 합니다.”


2. 롤모델을 떠올리며 영감을 얻어라


“강원도 산골 출신으로 외국계 호텔의 아시아인 최초 주방장이 된 박효남 셰프의 성공 스토리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끈기와 도전 정신, 신념과 인내력이 있으면 어려운 상황도 극복할 수 있다고 되뇌었습니다.”



김의곤 대한민국 명장

<김의곤 명장은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 지식을 담아 'Motor Core Press 금형 현장 실무'라는 지침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현장에서 지침서를 활용해 후진 양성에 힘쓰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담겨 있다>



3. 인생에 공짜는 없다


“저는 ‘인생에 공짜는 없다’고 믿습니다. 저희 집 가훈이자 제 좌우명이기도 하죠.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잊어버리기도 쉬운 말입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집에 걸어둔 가훈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습니다.” 


4. 도전에 따르는 어려움을 피하지 마라


“도전은 분명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피하지는 않았습니다.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안정된 직장에 다닌다고 끝까지 완주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도전의 바퀴를 끊임없이 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윤정(홍보3팀 대리) 사진 박해주(Day40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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