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출근중] 아버지, 그 이름이 가야 할 길
가정의 달마다 알게 모르게 소외되는 주체가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이들이 주목 받는 대상이 되는 반면 아버지란 개체는 사실 낄 자리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정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미미하거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라는 위치가 이토록 추락했는가’에 대해 우리는 곰곰이 따져봐야 합니다. 남성중심적 사고에서 남성의 표상인 아버지를 변호하려는 게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가정의 중심이자 기업 등 사회활동의 다수를 차지하는 기혼남성의 현주소를 제대로 짚어야 가정도 사회도 건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이 가운데 우리는 ‘하드 워킹 파더(Hard Working Father)’, 즉 고난의 아버지(줄임말. 워킹파더)의 특수 상황을 냉철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1세대 아버지는 6•25를 겪은 전쟁 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2세대 아버지는 외환 위기와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경험한 아버지 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3세대 아버지는 30대 초중반 이하의 현재의 아버지이거나 향후 아버지가 될 예비 아버지들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워킹파더를 1세대, 3세대 아버지와 구분하는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워킹파더는 사회적•문화적 측면에서 권위로 무장한 1세대와 개인주의로 대변되는 3세대 아버지들 사이에 놓인 ‘낀 세대’입니다. 둘째, 이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초유의 글로벌 경제 위기를 10여 년 사이 두 번이나 겪으면서 그로기 상태에 빠진 ‘깡통 세대’입니다. 부동산과 주식 투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직장인이라면 즉각적으로 이해가 될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워킹파더는 사회 문화적으로 낀 세대이자 경제적으로 깡통 세대인 셈입니다.
우선 낀 세대의 논리를 살펴보면, 1세대 아버지는 6•25를 겪고 국가 산업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한 번씩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1세대 아버지에게 “아버지 요즘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하면 “나는 보릿고개도 겪고 6•25 때는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다. 그리고 밤낮으로 회사에서 일해야 하는데 너는 그나마 쉬운 인생을 사는 거다.”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이처럼 1세대 아버지는 고생의 대가로 권위라는 보상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아울러 50대, 60대에 해당하는 1세대 아버지들은 사실 좋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젊었을 때 뼈 빠지게 고생한 끝에 장년기에 경제는 고도 성장기를 구가했고, 대부분의 사람이 고도 성장의 혜택으로 성실하기만 하면 자산을 불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3세대 아버지들은 어떨까요. 이들은 한 마디로 신세대입니다. 그들은 다원화된 시대와 핵가족화된 환경에서 교육받고 자라 자기중심 성향이 강합니다. 그만큼 가정 내 권위가 의미 없으며 2세대 아버지에 대한 봉양 의무도 없습니다. 다만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어 경제적 관점에선 1세대만큼 자산을 쌓기엔 불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유심히 들여다볼 2세대 아버지, 즉 워킹파더는 어떨까요? 일단 과거의 1세대 아버지들처럼 권위를 내세운다면 당장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가족 봉양 측면에선 1세대 아버지를 봉양해야 하는 의무감이 있는 반면 3세대 아버지로부터 봉양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바로 낀 세대의 아이러니입니다. 경제적으로는 두 번의 거대한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재테크와 직장생활에서 실패한 경험이 많아 1세대만큼 자산 축적이 여의치 않습니다. 깡통 세대의 비애입니다.
사회와 가정이 어려울 때 우리는 흔히 아버지라는 이름에서 희망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영원히 영웅이 될 수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작 아버지들은 힘든 내색조차 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습니다. 그렇다면 위기의 아버지들이 살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요. 패러다임의 전환밖에 없습니다.
우선 권위를 버리고 존경을 추구하는 아버지로 거듭나야 합니다. 1세대 아버지들의 근간이었던 권위에 대한 동경과 추억에서 벗어나고 존경형 아버지라는 새로운 모델을 모색해야 할 시점입니다. 권위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향식 힘의 관계인 반면 존경은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상향식 관계입니다. 기업 환경도 이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선임자의 권위에 따른 복종식 문화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생산성을 가로막고 있다는 반성에 따라 단위별로 자발적 업무 파악과 성과를 내기 위한 노력이 기업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봉사하는 마음과 실천도 빼놓을 수 없는 덕목입니다. 사회와 소통하고 공유하려는 마음과 실천을 아버지가 보여줄 때 아이들의 교육과 질도 달라집니다. 봉사하는 마음가짐을 가진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보며 자라는 아이들과 아내는 그런 가장을 존경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기업에서도 최근 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 CSV)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을 머리에 떠올려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워킹파더 본인이 스스로를 이기적으로 사랑하는 마음도 각별히 중요합니다. 가정을 위해 나를 희생한다는 명분은 어떻게 보면 현재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한 자기변명에 그칠 우려가 큽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생활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더욱 자신을 돌아보고 당당하게 본인이 하고 싶은 일과 욕구를 추구해야 합니다. 자녀와의 관계는 1세대 아버지처럼 권위에 입각한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수평적 구조를 추구해야 합니다. 소위 친구 같은 아빠라는 의미의 프렌디(friend와 daddy의 합성어)를 염두에 두라는 것입니다. 일 년에 한 번 형식적으로 카네이션을 받는 아버지 신세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사랑하는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아빠 힘내세요!”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런 가정에서 살고 싶다면 당신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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