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작가 고골의 ‘코’를 통해서 본 나의 잃어버린 꿈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 니코스 키잔차키스는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무능력 때문임을 인식했다."고 말했습니다. 고골이 단편 소설 '코'를 썼던 까닭 역시, 자신이 상경했었던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그에서 관리가 되고자 한 꿈이 좌절되자 이후에 꺾였던 욕망을 문학으로 표출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올해 1월, 효성의 사내 온라인 교육 강좌로 실시된 '러시아 작가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들었습니다. 이 때 알게 된 '페테르부르그 이야기'라는 단편모음집을 통해 니콜라이 고골의 환상소설 '코'와 '외투'를 읽게 되었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동안 '코'는 쓴웃음을 '외투'는 너털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게 했습니다. '코'라는 작품은 19세기에 쓰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코가 사람 행세를 하고 다닌다는 환상이 허구가 아닌 현실로 느껴질 정도로 세밀했습니다. 작가는 얼굴의 일부인 코를 사람으로 나타낸 환유를 통해 1830년대 러시아 관료들의 기득권 의식을 조롱하였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시민자유를 위한 참여문학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출처 : 교보문고 홈페이지
고골의 '코'에서 코는 얼굴 일부분으로 인간의 욕망 덩어리 전체를 나타냅니다. 이를테면 ‘효성의 두뇌가 중국으로 유출되었다.’라고 말할 때 두뇌는 '핵심인재'를 뜻하듯, 코는 이중적 함축의미로 인간의 '꿈'을 대표할 수 있습니다. 고골은 코와 외투를 통해 당시 러시아 관료주의의 권위 의식에 대한 허세를 꼬집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가 관등에 의해 정해지는 비정상적인 상황은 한국 권위주의 문화의 자화상으로도 비칩니다. 러시아어로 코는 'Nos' 거꾸로 하면 'Son', 즉 러시아어로 꿈을 뜻합니다. 고골의 언어유희가 담겨 있는 제목인데요,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페테르부르그의 이발사 이반 야꼬블레비치(냉담하고 바보스러운 사람이라는 뜻이 내포된 이름)는 아침으로 빵을 먹으려는데 빵 속에 사람의 코가 들어 있어 화들짝 놀랍니다. 옆에서 그 장면을 지켜본 아내는 어제 손님을 면도하면서 코까지 벤 거냐며 경찰서에 신고해버리겠다고 합니다. 야꼬블레비치는 피 한 방울도 안 나는 코를 천에 싼 후 근처 다리로 나가서 강가에 몰래 버렸는데, 그 모습을 수상쩍게 여긴 경관은 그를 불러 심문합니다.
<고골의 단편 '코' 속에서, 떨어져 나온 꼬발료프의 코는 살아 있는 인간처럼 행세한다>
잃어버린 코의 주인공은 전날 야꼬블레비치에게 면도를 받은 8등관 소령 꼬발료프(이름의 Kobel은 개처럼 이리저리 여성의 뒤를 쫓아다니며 기회를 살피는 행동과 잘 들어맞는 성격을 뜻함)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자기 코가 얼굴에서 안보이자 이제 어떻게 사교모임에서 귀부인들과 마주 보며 얘기할 수 있을지부터 걱정합니다. 자기 코의 행방을 알 길이 없는 꼬발료프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마차를 타고 코를 찾기 위해 도시 여기저기를 배회합니다. 그러던 중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자신의 코가 5급 관리(문관 대령급)의 신분으로 마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기겁하는데….
사회 구성원이라면 대부분은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심리에 의해 정해지는 진실과 타인의 기대대로 삶을 삽니다. 저를 비롯한 두뇌 속 차원이 한두 개 더 베타 테스트 중인 사람은 그 진실에 개의치 않거나 혹은 모른 채 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대다수 개개인은 평소에 진심과는 달리 현실의 질서대로 살면서 그 질서를 마지못해 따릅니다. 현실은 사람마다 多(개인의 가면이 여러 개)대 多(상대의 가면도 여러 개) 함수(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춰 페르소나(개인의 가면)를 번갈아 쓰면서 연기합니다. 이제는 상투어가 된 "인생은 연극이다."라는 말은 인간의 삶은 말마따나 인정받기를 원해 '끝없이 연기(이미지 메이킹)하다가 막을 내린다.'라고 일컫는 걸까요.
현실은 각자에게 진실된 삶이 아닌 또 다른 측면의 허구일 수도 있습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주의를 아시나요? 인간은 인간이라고 불리기 이전에 존재하였다고 말한 것처럼 현실에서 불리는 존재 자체는 거짓말일 수도 있습니다. 비단, 영화 '매트릭스'에서 0과 1로 이루어진 가상공간의 화면 속 인간들은 매트릭스에 의해 사육되고 있지만, 자신의 행위가 가짜인 것도 모르기에 시뮬라크르(시뮬레이션)의 삶이 실행되고 있는 거겠죠.
자신의 꿈이 현실의 질서 속에서 표출될 수 없더라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그 질서의 일부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속세의 인간들에게 진실은 누르고 감출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진실이란, 사회라는 무대로 오르기 전 상상하고 되뇌어본 '대본'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소설 속 꼬발료프가 자신의 코를 되찾은 후, 의사를 불러 붙여달라고 요청하지만, 의사는 잘못 건드렸다가 되레 해롭다는 말을 합니다.
"나는 돈 때문에 의사 노릇을 하고 있는 인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신념과 인술에 위배되는 것이니까요. 사실 코가 없어도 있을 때나 매한가지로 건강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차라리 상하지 않게 해놓으면 상당한 금액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너무 값을 비싸게 부르지만 않는다면 내가 팔아드릴 수도 있습니다."
절망에 빠진 꼬발료프 소령은 펄쩍 뛸 듯이 소리쳤다.
"차라리 코가 그냥 사라져버리는 편이 낫겠소."
출처 : 고골 단편선.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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