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C] 해외에도 ‘싸이월드 추억 보호법’ 같은 개인정보보호법이 있을까?

Story/효성


‘싸이월드 세대’라는 말이 있죠. 국내 1세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라 할 수 있는 싸이월드(Cyworld)를 한때 열렬히 사용했었던 분들에 대한 통칭입니다. 싸이월드는 1999년 9월 서비스를 시작한 뒤, 2000년대 초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았죠. 그러다 2004년 페이스북, 2006년 트위터 등 해외 SNS 플랫폼이 속속 창업하고 세계적 성공을 거두면서 싸이월드는 점차 쇠퇴기를 맞습니다.


그리고 2020년 7월, 싸이월드의 사업자 등록이 국세청 직권으로 말소됨으로써 사실상 폐업 수순을 밟게 됐다는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싸이월드 세대들, 특히 2000년대에 십대·이십대 시절을 보낸 분들이라면 만감이 교차했을 듯합니다. 온라인 플랫폼 안에 고이 저장돼 있던 추억들(사진과 다이어리)이 통째로 상실되는 것이니까요. 이러한 대중의 아쉬움은 결국 사회적 이슈로까지 발전했는데요. 그렇게 등장한 법안(발의안)이 바로 ‘싸이월드 추억 보호법’입니다.


싸이월드 세대들에겐 특별한 의미인 ‘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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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추억 보호법’ 통과되면 미니홈피 데이터 살릴 수 있나요?


지난 7월 13일, 몇몇 국회의원들(허은아 의원 등 11인)이 ‘개인정보보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일명 ‘싸이월드 추억 보호법’입니다. 개정안 발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 ‘싸이월드’의 폐업 위기로 이용자가 회수하지 못한 개인정보가 모두 사라질 상황에 놓여 있음. 그러나 현행법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서비스를 장기간 이용하지 않은 사람의 개인정보를 파기하려는 경우 보관 기간 만료 30일 전까지 그 사실을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이용자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전송을 요구할 권리와 이에 따른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개인정보 전송 의무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고 있음. [···]


_ ‘개인정보보호법 일부 개정 법률안’ 일부 / 국회입법예고 사이트에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국내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상, SNS 이용자들은 이미 업로드한 데이터를 서비스 제공사 측으로부터 돌려받기 어렵다는 거죠. 싸이월드처럼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이 별안간 서비스 종료를 선언할 경우, 해당 플랫폼의 내 게시물들이 통째로 증발해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항의를 해본들 별 뾰족한 수는 없죠.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돌려줘야 한다는 ‘법적 의무’가 서비스 제공사들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싸이월드 추억 보호법’ 발의안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문. 싸이월드 추억 보호법이 발의되면 미니홈피(싸이월드 내 사용자 개인 공간으로, 인스타그램으로 치면 ‘피드’에 해당) 데이터들을 회수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쉽지는 않습니다. 불가능하다, 라는 쪽에 좀더 가까워요.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싸이월드 이용자 데이터 보호를 위한 긴급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싸이월드 창업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 등이 참석했는데요. 이날 토의된 내용에 따르면 싸이월드 사용자 데이터는 2개 서버에 나뉘어 보관돼 있는데, 데이터뿐 아니라 서버 또한 손상이 커서 복구 작업이 어렵다고 하네요.

(참고 기사: 「국회로 온 싸이월드 “사실상 데이터 복구 어려워” ··· 제2의 사태 막아야」, 전자신문 2020년 7월 10일자 기사)


즉, 이번에 발의된 ‘싸이월드 추억 보호법’은 현재의 싸이월드 사태가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제2의 싸이월드 사태’를 막기 위한 개정 법안인 셈입니다.

 

‘보관한다, 다시 찾는다.’
SNS에 게시된 내 개인정보들도 이렇게 보관과 회수가 간단하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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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도 ‘추억 보호법’이란 게 있을까?


이쯤에서 또 질문.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요? 해외의 개인정보보호법은 ‘추억 보호법’ 같은 법적 장치를 마련해놓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최근 들어 법제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라는 것이 가장 정확할 듯한데요.


우선 살펴볼 사례는 유럽연합(EU)입니다. EU 회원국들은 2016년 통일된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하고 2018년부터 시행했는데요. 이름 하여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s)’입니다. 이 법은 개인정보 보호 및 관리 절차의 엄격함으로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논의 중인 다른 나라들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고요.


유럽연합이 제정한 강력한 개인정보보호법 ‘GDPR’ | 출처: GDPR.EU


GDPR이 특히 주목받은 이유는 제17조에 명시된 ‘잊힐 권리’ 때문입니다. 이 조항은 정보 주체(서비스 사용자)가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하여 ‘삭제권 및 확산중지권(abstention from further dissemination)’을 행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요. 개개인의 ‘정보 주권’을 강력하게 보장한다는 취지입니다.


EU 회원국인 프랑스는 GDPR 제정과 더불어, ‘디지털공화국법’이라는 자국만의 개인정보보호법도 재정비했습니다. 이 법은 정보 주체의 ‘데이터 회수권’을 명시함으로써, 사용자가 특정 서비스사로부터 자신의 개인정보를 돌려받을 수 있도록 법제화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의 중인 ‘추억 보호법’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한 ‘CCPA(The California Consumer Privacy Act)’라는 개인정보보호법 또한 정보 주권을 주요 조항으로 명시했죠. 이 법은 제정 과정에서 GDPR을 적극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싸이월드 추억 보호법’ 발의안에도 정보 주권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돼 있어요.



[···] 이용자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등에게 자신의 개인정보를 전송하여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요구를 받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등은 이용자에게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전송하도록 함으로써 이용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두텁게 보장하려는 것임. [···]


_ ‘개인정보보호법 일부 개정 법률안’ 일부 / 국회입법예고 사이트에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라는 용어에 밑줄을 그어야겠네요. 제2의 싸이월드 사태를 막기 위해 발의된 ‘싸이월드 추억 보호법’은 즉, 국민 개개인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정보 주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법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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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추억 보호법’, 만약 시행되면 무엇이 바뀔까?


지금은 법안 발의가 됐을 뿐, 국회 의결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해당 법안에 대한 시민 사회, 전문가 집단 등의 의견도 수렴해야 할 테고요.


하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싸이월드 추억 보호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얼마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정식으로 발효된다면, 우리 일상은 어떻게 바뀔까요? 


우선은 이런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업 중인 해외 기업들의 서비스 정책이 변화할 겁니다. 이를테면 SNS 서비스의 개인정보 활용 정책에 ‘사용자 데이터 삭제권·확산중지권·회수권’ 항목이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회원 탈퇴 시, 그동안 업로드했던 모든 게시물들의 삭제 및 확산중지 조치를 요청하거나 데이터 전송을 요구할 수 있게 되겠죠? 만약 이 절차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면 법리상 항의도 가능할 것입니다. 이러한 ‘데이터 회수’ 문제를 다루는 전문 직군이 새롭게 주목받을지도 모르겠네요.


서비스 제공사 입장에선 새 개인정보보호법 대응책 마련에 따른 시간과 비용이 발생할 텐데요. 이 과정에서 기업의 입장, 고객의 입장이 상충할 가능성도 있죠. 현실성 있는 타협안 도출을 위해 긴 논의가 이어질 것이고요.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나니, ‘싸이월드 추억 보호법’이 여러 사회적 요소들이 맞물린 이슈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 혹은 빅데이터 시대라 불리는 지금, 정보 주체인 우리가 ‘싸이월드 추억 보호법’을 주목해야 할 이유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