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 인문학] 나답게 사는 것만으론 부족해! 직장인에게 필요한 ‘주체성’
직장인들이라면 한 번쯤 ‘주체적으로 일하라’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텐데요. ‘주체적’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습니다. ‘자주적이고 자유로운 성질이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그렇다면 주체적으로 일한다는 건 자주적이고 자유롭게 일하라는 의미가 되겠죠.
회사 임직원 개개인이 만약 자주적이고 자유롭게, 즉 주체적으로 일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니, 정말 그렇게 일해도 괜찮은 걸까요?(소심소심, 조심조심···) 회사에는 사칙(社則)과 고유한 사내 문화가 있잖아요. 그리고 공적 관계를 유지해야 할 동료·후임·상사, 응대해야 할 고객들도 존재하죠. 마냥 자주적이고 자유로워지기란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주체적으로 일하기, 그거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여기까지 생각하니 왠지 울적해집니다. 우리 직장인들은 아무래도 주체적이기 어려운 듯해서요. 하지만! 바로 이럴 때 인문학은 우리를 토닥토닥 위로해준답니다. 이번 시간에는 ‘주체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아볼게요.
‘주체적으로 일하라’. 자칫 뜬구름 잡는 말로 오인될 수도 있어요.
‘주체성’이란 무엇인지부터 고민해보아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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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과 ‘나뿐’의 차이
한자어인 ‘주체’는 주인 주(主), 몸 체(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체성을 뜻하는 영단어 ‘self-direction’은 직역하면 ‘스스로 방향 잡기’입니다. 내 몸의 주인으로서 내 갈 길을 직접 정하는 상태, 이것이 바로 주체성이죠. 그런데 여기서 모든 해석이 끝나는 건 아니에요. 약간의 응용이 필요합니다. f(𝒳) 함수로 치면 𝒳의 자리에 ‘나’ 대신 ‘타인’을 넣어보는 거죠. 그러면 이러한 결과가 나옵니다.
내가 내 몸의 주인이듯 타인도 자기 몸의 주인이고, 따라서 타인도 자신의 길을 스스로 정할 줄 안다. 즉, 나에게 주체성이 있듯 타인들도 각자 주체성을 지니고 있다.
주체성에 대한 해석은 이처럼 ‘나’와 ‘남’을 동시에 포괄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타인의 타인다움을 인정하는 진정한 나다움의 완성이기도 하죠. 주체성 해석이 만약 ‘나’에서만 끝난다면? 나다운 사람이 아니라 ‘나뿐’인 사람이 될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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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주체성 vs. 주중의 주체성
현대의 여러 철학자들이 주체성을 화두 삼았습니다. 그중 한 명이 이번 시간에 만나볼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입니다. 그는 우리가 홀로 있느냐, 타인과 함께 있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주체성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는데요.
이분이 바로 에마뉘엘 레비나스입니다. | 출처: Wikipedia
인용문 [A]
나는 나를 에워싼 공기와 물과 햇볕을 홀로 즐길 수 있다. 바로 이 향유를 통해 주체성의 모습이 최초로 드러나는 것으로 레비나스는 묘사한다.
향유는 하지만 순간적인 것에 불과하다. 만족감을 맛보는 순간, 내일에 대한 불안이 고개를 내민다.
_ 출처: 레비나스 저 『시간과 타자』 130~131쪽, 역자 강영안 교수의 해설 「레비나스의 철학」 중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사람, 가고 싶은 장소로 채워진 주말! 이런 향유의 시간에 우리는 ‘주체성 뿜뿜’ 상태죠. 하지만 주말은 지나가고 “내일에 대한 불안이 고개를” 내밀고 월요병이 찾아오고······. 마치 직장인들의 일요일 밤을 묘사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어지는 글을 좀더 읽어볼게요.
인용문 [B]
레비나스는 노동을 ‘즐김’과 대비시킨다. 우리는 우리의 욕구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오늘의 즐거움을 유보한다. 현실은 노동을 통해 소유되고, 일정한 꼴이 획득되며, 우리에게 종속된다.
(···)
인식과 노동을 통해 사물들과 관계할 때 인간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언제나 타인의 존재를 경험한다. 타인은 나와 함께 일하기도 하고,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 이러한 타인의 존재는 무엇을 뜻하는가? 타인의 출현은 나의 삶에 무엇을 뜻하는가? 나의 독립성의 한계인가? 나의 존재에 새로운 의미, 새로운 차원을 열어 주는 사건인가?
_ 출처: 앞의 책(글) 133~134쪽
인용문 [A]와 [B]는 각각 홀로 있을 때(즐기고 있을 때)의 주체성, 타인과 함께 노동할 때의 주체성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직장인 입장에서라면 주말의 주체성과 주중의 주체성이랄까요?
직장인의 일상은 어느 노랫말처럼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일지 모릅니다. ‘9 to 6(나인 투 식스)’라는 근무 시간이 월·화·수·목·금 이어지니까요. 하지만 레비나스가 이 가사를 접했다면 이렇게 정정했을 듯합니다. ‘일정한 꼴이 획득된 하루이자 우리에게 종속된 하루’라고 말예요.
레비나스 식으로 바라보면, 직장인들이 9 to 6에 맞춰진 게 아니라 직장인들 스스로 9 to 6라는 일정한 꼴을 각자의 삶 안에 획득한 것이 됩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취업하는(직업을 ‘얻는’) 순간, 9 to 6라는 삶의 양식도 자동으로 ‘얻는(획득하는)’ 셈이니까요.
또한, 사무실 안에서 우리는 타인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 자체로 우리는 홀로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주체성을 갖게 된다, 라는 것이 레비나스의 시선이에요. 타인들과 함께할 때 비로소 나의 주체성은 보다 선명해진다는 거죠. 산머리에 구름떼가 걸리면 산 높이가 더 확연히 느껴지는 것처럼요.
저 모양 다른 퍼즐 조각들이 개개인의 주체성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잘 한 번 맞춰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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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으로 일한다 = 서로가 서로의 주체성을 존중하며 일한다
레비나스가 강조한 주체성은 엄밀히 말해 ‘타자의 주체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레비나스는 ‘타자의 철학자’라 불리기도 합니다.) 모든 타인을 주체적 존재로 받아들일 때, ‘나’의 주체성 또한 타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주체적 삶이란 단지 ‘나답게’ 사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
직장인들이 흔히 듣는 그 말, ‘주체적으로 일하라’!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을 찾는다, 자발적으로 업무에 매진한다, 자신감 있게 일한다, ······처럼 직원 혼자만의 각성을 요구하는 차원이면 곤란하겠죠. 그보다는 직장 내 모든 구성원이 타인의 주체성을 존중하며 일하기- 이런 모습이야말로 주체적이고 슬기로운 직장 생활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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