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 인문학] 거미에게 공감하다, 그리고 배우다

2019. 12. 2. 13:18


효성 블로그의 새 코너 ‘토닥토닥 인문학’은 이름 그대로입니다. 우리를 토닥토닥 위로하는 인문학, ‘괜찮아요- 당신은 잘 하고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인문학, 그런 지성을 함께 나누는 코너죠. 첫 순서로, 거미를 한 번 만나볼까 합니다.


‘응? 거미와 인문학이 무슨 상관···?’ 이렇게 의아해 하실 분들도 계실 텐데요. 거미의 일상은 왠지 직장 생활과 닮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거미는 거미줄에 걸린 먹이만 먹으며 살아가죠. 거미줄이 끊기면 거미의 밥줄(?)도 끊기는 셈입니다. 거미의 거미줄과 직장인의 회사, 서로 유사성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직장인이 쉽게 회사를 그만두기 어렵듯, 거미도 거미줄을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직장인과 거미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거미를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면 커다란 반전이 일어납니다. 즉, 직장인의 삶이 전혀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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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다 잘나가는데, 왠지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을 때


‘파이어족’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족’과는 또 다른 ‘프로 삶러’(?)인데요. 파이어(FIRE)는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일찌감치 금전적 독립을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20~30대에 열심히 벌고 40대에 은퇴한다! 이것이 바로 파이어족의 인생관이라고 하네요.


이 대목에서 괜스레 헛헛해집니다. ‘파이어족까지 등장했다는데, 난 그동안 뭐했지?’ 하는 자조 섞인 생각도 하게 되네요. 뭐랄까, 40대 은퇴가 가능할 만큼 자금 운용을 해둔 이들과 비교해보면, 왠지 나 자신은 정체돼 있는 것만 같은 기분···


나만 뒤쳐진 것 아닐까? 나만 멈춰 있는 것 아닐까? 나만··· 지금 여기에 혼자 있는 걸까···?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점점 더 울적해집니다. 누군가는 이른 나이에 벌써 성공을 했다 하고, 나랑 동갑내기인 또 누군가는 SNS 인플루언서(influencer)로서 수많은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다 합니다. 나도 성공하고 싶은데, 나도 SNS를 하는데···


이런, 여기서 중단해야겠습니다. 머릿속 생각 하나하나마다 ‘···’이 너무 많아지네요. 아무래도 이제, 오늘의 주인공인 거미를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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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안에서만 먹고사는 거미, 불쌍한 게 아니라 창의적인 겁니다!


거미는 원하는 먹이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거미줄에 어쩌다 걸린 먹이를 군말 없이 먹죠. 이렇게만 보면 거미의 생애란 참 안쓰러운데요. 그런데, 여기에 인문학적 시선이 가미되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됩니다.


어떤가요? 얼핏 보기에 거미의 조건이 훨씬 불행해 보이죠? 그러나 여기에 큰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중략) 말하자면, 자신의 제한적 조건에 선택이라는 머리를 굴리지도 않고, 굴릴 필요도 없이 모조리 먹이가 되게-하는/되어야만 하는 ‘몸의 능력’ 자체가 자유라는 역설적 사실을 보여줍니다. 얼마나 놀라운 반전입니까?

아무리 거미줄 안에서 선택의 자유가 없다 해도, 아니 바로 선택의 자유라는 여지가 없기에 제한된 범위 ‘모두’가 (본래 자신이 원했던) 자신의 것이 될 수밖에 없는, 즉 인-과를 역류시키는 긍정적 ‘능력’을 구사하게-되는 경우라는 말입니다. (중략) 자신의 먹거리에 온몸을 던져 모조리 먹이가 되게-하는 필연이 바로 몸의 긍정적 능력임을 보여주는 사례지요.

_ 홍명섭 저 <현대철학의 예술적 사용> 88쪽


“모조리 먹이가 되게-하는/되어야만 하는 ‘몸의 능력’ 자체가 자유”, “자신의 먹거리에 온몸을 던져 모조리 먹이가 되게-하는 필연” 같은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곤충의 생애가 인간의 삶과도 동기화(sync)될 수 있다는 점도 깨닫게 되는데요.


직장 생활을 한 번 대입시켜보죠. 일정에 없었던 업무, 기획안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항, 내 의지나 방향성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워크플로우, ···. 직장 안에선 이런 일들이 심심찮게 발생하죠. 실무자 입장에선 ‘내가 하긴 하지만 내 일이 아닌 것 같다’라는 헛헛함도 느낄 수 있을 거고요.



하지만 그럴 때, 거미를 떠올려본다면 어떨까요. 자율적으로 실행하든 타율적으로 진행하든, 그 어떤 일이든 “모조리 먹이가 되게-하는/되어야만 하는” 태도를 가져보는 겁니다. 그 모든 일들을 내 ‘먹잇감’으로 만들기! 그리하여 내 커리어를 성장시키기!


왠지 갇혀 있는 것만 같고, 살아내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듯하고, 나 혼자만 뒤쳐지고 멈춰 있다 느껴질 때- 때때로 거미를 떠올리며 “무엇이든 나의 것이 되게-소화-해내는 능력”을 되찾아보시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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