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 자산 관리, 아직도 은행 가서 하시나요?
은행에만 예금하는 건 옛말?
최근 곳곳에서 은행인 것 같기도 하고 은행이 아닌 것 같기도 한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 쇼핑 업체인 쿠팡은 예치금을 받고 이자를 지급하기 시작했는데요. 현재 연 5%의 이자를 지급하는 상황. 200만 원을 넣어두면 매년 10만 원 상당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치금은 언제든 뺄 수 있으니, 고금리 예금 상품에 넣어둔 것과 비슷한 셈입니다. 쿠팡 입장에서는 사업 자금이 필요한데, 은행에서 이자를 내고 돈을 빌려오느니 차라리 고객의 돈을 예치금으로 마련해 쓰고 고객에게 이자를 지급하자는 발상을 한 것이죠. 회사는 싼값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고객은 이자 수익이 생기니 상호 이득이라는 논리입니다.
물론 은행의 이자 지급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습니다. 쿠팡의 경우 이자를 현금이 아닌 포인트로 지급합니다. 포인트는 인출이 불가능하고 해당 사이트 내에서만 쓸 수 있지요. 유효기간이 있어서 쓰지 않고 놔두면 없어지기도 합니다. 알리페이 등 외국의 모바일 결제 회사들은 이미 예치금을 받고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을 보편적으로 활용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서비스가 많아질 전망입니다.
핀테크 서비스의 진화
이게 끝이 아닙니다. 지난 3월 금융위원회는 은행의 결제 시스템에 핀테크 기업이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현재 결제나 송금을 하려면 반드시 각 은행의 금융결제망을 이용해야 합니다. 물론 토스나 카카오페이 등의 애플리케이션에서도 송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건 해당 업체가 모든 은행과 각각 제휴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진 않지만, 물밑에선 ‘우리 고객이 A은행에서 B은행으로 송금을 원합니다’라고 은행에 협조 요청을 하고 그때마다 송금 수수료를 대신 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모든 은행들이 참여하는 공동 결제 시스템을 만들고 거기에 은행뿐 아니라 핀테크 기업들도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게 금융 당국의 계획입니다. 앞으로 토스 같은 업체들이 은행에 협조를 요청하지 않더라도 직접 송금이나 결제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상의 은행이 되는 셈이지요. 공동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면 각 은행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송금 수수료도 대폭 낮아질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서비스나 금리 조건을 내건 핀테크 업체들이 쏟아질 것 같습니다.
은행 가는 대신 ‘앱’으로 자산 관리하는 시대
고객 입장에서도 꼭 은행을 거치지 않아도 자산 관리와 다양한 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공인 인증서 없이 자산을 관리하는 핀테크 업체들의 서비스가 이미 광범위하게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토스는 이미 기존 은행을 위협하는 수준입니다. 국내 토스 사용자는 1,000만 명을 넘었지요. 국민 5명 중 1명은 토스를 쓰고 있다는 뜻입니다. 간편한 송금 서비스를 내세운 토스는 이제 종합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거의 모든 은행 계좌의 잔금을 관리할 수 있는 데다 여러 신용카드 사용 내역까지 한 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적금도 들고 펀드에도 투자하며 P2P 대출 서비스까지 가능한 토스. 기존 금융 회사들이 토스와 제휴하려고 줄을 섰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영향력이 큰 상황입니다. 뱅크샐러드 역시 토스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흩어져 있는 금융 데이터를 한눈에 볼 수 있는데요. 뱅크샐러드는 지출과 소비 패턴 등을 정리하고 맞춤형 금융 상품을 추천하는 기능에 조금 더 특화돼 있지요.
울타리가 사라진 은행들의 생존경쟁
이처럼 은행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자, 금융 사고 가능성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이냐는 과제가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어 A은행에서 B은행으로 송금하는 건 사실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닙니다. 마치 서로 외상 장부를 달아놓듯 장부상 숫자만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합니다. 실제로 돈이 오가는 건 그날 밤 자정 무렵이 되어야 정산이 이뤄집니다. 은행들은 서로 오랫동안 사업을 해온 믿을 만한 파트너이니, 이런 식의 외상 거래를 해도 별로 걱정할 일이 없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새파랗게 젊은 핀테크 업체들이 등장해 외상 거래를 하자고 하면 불안할 것 같습니다. 만약 외상 거래를 했는데 엉뚱한 곳으로 돈을 보내고 파산해버리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은행이 누리던 기득권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은행도 이제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은행들도 공동 결제망을 이용해 여러 은행의 계좌를 한 번에 관리하는 방식을 도입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신한은행 애플리케이션에 로그인하면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 하나은행 등 여러 계좌의 송금과 결제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것이죠. 아마 은행이 핀테크 업체보다 더 믿을 만하고 편리하다는 점을 강조할 테지요. 울타리가 사라져버린 은행들의 치열한 생존경쟁이 시작됐습니다.
글. 안승찬(이데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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