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 투 더 효성 1966, 49년 전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2015.11.03 15:00




요즘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시간여행을 하는 영화 <빽 투 더 퓨처>가 새롭게 개봉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죠. 특히 영화 속 배경인 2015년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한데요, 그 중 자동으로 신발 끈을 조절해주는 운동화라거나, 날아다니는 후버보드, 안경 전화기 등은 완벽하게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비슷하게나마 상용화 되어 ‘빽 투더 퓨처의 예언’이라고도 이야기하곤 합니다.


<빽 투 더 퓨처>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우리도 시간 여행을 떠나 볼까요? 11월 3일 창립기념일을 맞은 오늘, 시간여행을 통해 효성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해요. 그래서 준비해 본 이름하여 ‘빽 투 더 효성’ 1966, 효성의 49년 간의 이야기 속으로 출발~



 효성 신입사원 신효성, 1966년으로 떠나다


어느 날 효성 신입사원 신효성 씨를 부르는 김 부장님. 자신이 타임머신 HS1호를 개발했다는 비밀을 남몰래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다짜고짜(?) 신효성 씨를 태우는 김 부장님.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더 발전시킬 수 있다면서 말이죠. 그렇게 갑작스럽게 신효성 씨의 시간 여행이 시작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창업자 조홍제 회장의 집무실. 삼성그룹의 창업 초기 성장 주역이었던 조홍제 회장은 56세에 독자사업에 나서 효성물산을 토대로 효성그룹의 밑그림을 그려 나간 인물입니다. 조선제분과 한국타이어, 대전피혁을 인수하여 여러 난관을 뚫고 경영정상화에 성공하는 수완을 발휘하였죠. 이를 통해 오랜 숙원이었던 기간산업 진출을 결심하고, 효성그룹의 토대가 되는 동양나이론 건설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나일론에 주목하고 있어. 부드럽고 가늘면서도 강하기 때문에 의류뿐만 아니라 산업자재용으로도 용도가 다양하지. 기간사업을 통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생각이야.”


효성그룹의 창업 기반을 다진 조홍제 회장은 오랜 숙원이었던 기반사업 진출을 결심하고 1966년 11월 3일 동양나이론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효성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후 1967년에 타이어코드지 국산화라는 야심찬 계획 아래 자체 기술 생산에 성공했으며, 1968년에는 비로소 울산공장을 준공하여 시제품을 생산하는 데 성공하였답니다.




 1970년대, 종합화섬메이커 위상 확보 및 사업 다각화


“앞으로는 기술을 높이고 고급 인력 육성을 위해 기술연구소를 확대할 계획이야”

조홍제 회장과 이야기를 마치고 70년대로 이동한 신효성 씨, 앞서 그의 말처럼 효성은 1971년 국내 최초로 민간기업 기술연구소를 설립하여 높은 기술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해 나갑니다. 기술연구소는 효성 기술력을 이끌어 온 핵심 부문으로 성장하게 되었는데, 현재까지도 효성의 R&D 역량 강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후 동양나이론의 빠른 성장과 함께 동양폴리에스터, 동양염공 등을 설립함으로써 나일론원사 외 폴리에스터원사와 염색가공까지 섬유일관생산체제를 갖추게 되었고 패션의류 분야에도 진출하여 종합화섬 메이커의 위상을 확보하였습니다.



여러 사업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효성은 수출 활성화를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보다 기여하겠다는 신념으로 고품질 제품 개발과 수출시장 개척에 많은 공을 들였고, 그 결과 70년대 중반 타이어코드 단일 품목만으로도 한 해 1,000만 불 이상의 수출 실적을 올리게 되었고, 1979년에는 5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1980년대, 세계적으로 성장세를 과시하다


1980년대로 이동한 신효성 씨는 놀라운 기사를 보게 됩니다. 효성이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에 선정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80년대 초 효성은 효성그룹, 한국타이어그룹, 효성기계그룹으로 독립 경영체제를 실현하여 각각의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해갔는데요, 특히 화학, 정보통신, 중공업, 건설 등의 사업 다각화를 적극 전개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1980년, 효성그룹의 계열이 효성물산과 동양나이론, 동양폴리에스터, 효성중공업을 중심으로 한 효성그룹과 한국타이어, 대전피혁으로 분리되어 주거래 은행을 달리하는 등 완벽한 독립경영 체제를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조석래 회장이 1983년 6월, ‘그룹 경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고 제2의 창업에 대한 결의를 천명하였죠. 이를 통해 효성의 24개 계열 기업을 합병이나 매각 또는 청산 등의 방법으로 대폭 정리해서 그룹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동시에, 8개 기업을 주축으로 하는 통합 운영체제를 구축해나갔습니다. 같은 해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카페트 사업을 육성하였고, 금융 자동화기기 사업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


1990년대에 도착한 신효성씨가 본 효성의 모습은 조금 새로웠습니다.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고, 해외 생산이 더욱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와는 다른, 더욱 생동감 넘치고 열정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시기에 글로벌 경쟁체제가 본격화되면서 효성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기 위한 일환으로 고부가가치제품 개발에 역량을 기울였는데요, 그 결과 ‘섬유의 반도체’ 스판덱스와 초고속 송전망 시스템의 핵심 제품인 765KV 변압기 등을 독자기술로 개발하게 되었고, 프로필렌, 필름, TPA 등의 화학부문 신규사업에도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부터 사업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효율화를 추진한 효성은 1998년 주력 4개사를 통합해 ㈜효성을 탄생시켰고, 책임경영체제 아래 7개 PG와 25개 PU로 사업부문을 구성하여 그룹의 역량을 집중해 글로벌화를 추진함으로써 2000년대 이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2000년대~현재, 글로벌 No.1 기업으로 거듭나다


현재로 되돌아올 수 있는 날, 마지막으로 신효성 씨와 김 부장님은 2000년대로 향합니다. 효성의 2000년대는 활발한 해외 시장 개척과 글로벌 일류 수준의 품질 확보를 위해 심혈을 기울인 기간으로, 타이어코드, 스판덱스 등의 주력 제품이 글로벌 No.1에 오르는 시기였습니다. 2000년대에 도착하여 신효성 씨가 향한 곳은 중국 가흥. 연간 1만 1천여 톤의 타이어코드를 생산할 수 있는 중요한 글로벌 생산기지 중 하나인 이곳에 도착하고 나니 효성의 활발한 사업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시기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하여 역량을 집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탄소섬유, 아라미드 원사, 전기차 모터, 경량화 타이어코드 등의 제품 개발에 힘썼으며, 신재생에너지와 전자재료, 첨단산업소재 등 미래유망사업에도 진출하여 신성장동력 육성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2002년에는 세계 최초로 모바일 바코드를 이용한 신종 ATM기를 개발하는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혁신적인 솔루션을 개발하였을 뿐 아니라, 2004년에는 국내 최초로 750KW급 풍력발전시스템을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하고, 2009년에는 풍력발전 국제인증기관인 독일의 DEW-OCC로부터 인증을 획득하는 등 국내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했음을 입증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효성은 100년, 200년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기 위해 한 발 더 나아가겠다는 계획입니다.



2000년대를 마지막으로 현재로 돌아온 신효성 씨와 김 부장님. 효성이 세계 일류 기업으로 거듭난 것은 끊임 없는 연구개발과 도전 때문이었다는 것을 명심하며, 남다른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창립 49년을 맞이한 효성, 지금까지 여러분 곁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의 아낌 없는 관심과 응원 덕분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생활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드는 기업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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