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주인이 들려주는 진정한 삶의 가치,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연일 전 세계 경제가 어렵다 말합니다. 청년 실업률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 문제는 끊임없이 재기되며 퇴직에 대한 불안도 커져갑니다. 더 열심히 일하면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통하지 않는 듯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제가 이 책을 펼친 이유입니다.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시골에서 빵집을 차립니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비윤리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현실에 의문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가 속한 경제체제인 자본주의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대안을 ‘천연균’과 ‘마르크스’라는 특이한 조합에서 찾아냅니다.
신유진 사원이 직접 그린 일러스트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빵집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잠재능력을 끌어내는 천연균의 힘
저자의 빵집은 이윤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방식으로 더 좋은 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여기서 자연의 섭리란, 이스트가 아닌 천연균을 이용한 발효입니다. 저자는 이를 위해 균을 배양할 수 있는 고택을 찾아가 균이 좋아하는 자연재배 밀로 원료를 바꾸는 것도 모자라 더 좋은 물을 찾아 이사를 감행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을 위해 균을 개량하는 것이 아니라 균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환경에 맞추기 위함이죠. 그 결과로 만들어진 빵은 이스트를 사용한 단조로운 맛이 아닌 깊고 풍부한, 제각기 다른 다채로운 맛을 냅니다.
"비료를 안 준 작물은 살기 위해서 흙에 양분을 얻으려고 필사적으로 뿌리를 내리지. 작물 스스로 자기 안에 숨은 생명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살아보려 한다는 거야. (중략) 밀이나 쌀로 치면 생명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한 톨 한 톨에 모든 생명력을 응집시킨다는 말이야." (p132)
생명력이 이렇게 강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잊고 있었습니다. 문득 사람에게도 이 원리가 똑같이 적용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든지 말만 하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부유한 친구들. 대학교를 갓 입학했을 때는 그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나도 유학 가고 싶고 돈 걱정 없이 쇼핑하고 비싼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 세상을 원망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부모님께서 만들어주신 환경과 그 속에서 형성된 제 생명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석이었습니다. 부자보다 가난한 이의 생명력이 더 강하다는 식의 이분법이 아닙니다. 자본보다 인성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사회는 과학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옛사람들은 과학이 없었어도 자연을 보는 눈과 감성을 키워서 자연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았다. (중략) 과학을 발전시킨 인류의 업적은 물론 대단하지만, 인간 각자가 지닌 내면의 힘도 크고 훌륭하다. 옛사람들이 할 수 있었다면 지금 사람들이 못할 이유가 없다. 과학의 힘에 밀려 멀어지고 사라진 인간 내면의 힘이 우리 안에 분명 존재한다." (p208)
시골 빵집, 마르크스를 만나다
그는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빵집의 운영 원리를 찾습니다. 상품에 알맞은 가격을 받되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제공하고 이윤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순환하는 경제를 만드는 것. 그는 자본주의라는 체제 하에 살아가되 자본주의의 핵심인 이윤 추구를 거부함으로써 대안을 모색합니다.
"마르크스는 그 점을 가르쳐준다. 이스트를 사용해서 누구라도 쉽게 빵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빵 값이 싸지고 빵집 노동자는 싼 값에 계속 혹사당하게 된다. 또 공방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은 단순해져서 빵집 노동자는 아무리 오랜 시간을 일해도 빵집 고유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다.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엄선한 재료를 사용해 정성과 수고를 들여 빵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대가로 정당한 가격을 매겨야 한다. 제빵사는 본인의 기술을 살린 빵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p70)
사실, 기술의 발전은 상품의 가격을 낮추고 가격이 낮아지면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릴 수 있기에 삶이 보다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한 저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감되는 건, 노동의 가치가 예전보다 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의 노동력은 너무도 쉽게 대체 가능합니다. '장인'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어버렸죠. 아무리 큰 회사에서 일하더라도 누군가가 내 일을 짧으면 며칠, 길게는 몇 달만 인수인계를 받으면 해낼 수 있다는 사실, 즉 ‘나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은 때로 허무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한 공산주의는 그 한계가 증명됐습니다. 이에 저자 와타나베는 노동자게 작게나마 자신의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 '소상인' 경제가 자본주의의 대안이라 주장합니다.
"기술자는 기술과 감성을 연마하여 노동력의 교환가치를 높게 유지하면 된다. 그리고 기술자이자 생산자가 만든 높은 교환가치의 재료(상품)를 구입하면 된다. 그렇게 상품 하나하나를 정성껏 만들고 상품의 교환가치를 높게 유지해야 소상인이 소상인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 착취 없는 경영이야말로 돈이 새끼를 치지 않는 부패하는 경제를 만들 수 있다." (p196)
여기서 부패하는 경제란, 소멸과 탄생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적용한 경제의 순환입니다. 실제로 그의 빵집은 일주일 중 3일만 영업하고 빵집의 수익을 투명하게 공개해 모든 종업원과 나눈다고 합니다. 말로는 쉬워도 실천은 어려운 법인데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가 대단해 보입니다.
하지만 소상인 경제 또한 자본주의의 완벽한 대안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한국 자본주의>를 집필한 장하성 교수도 협동조합이나 마을 공동체는 자본주의의 보완재일 수는 있어도 대안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규모가 넓어지면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유지하기 어려워질 겁니다. 다만 더 따뜻한 자본주의를 꿈꾸는 이런 도전, 그리고 와타나베 이타루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더 많이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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