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인터뷰] 고향은 다 달라도 동료애 뜨거운 곳, 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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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진정한 대업이다.”  

“참으로 나약해 보이지만 더없이 끈질기고 강인한 존재, 그게 백성들일세.” 



매회 심장을 파고드는 명대사로 수많은 어록을 남긴 KBS1 대하드라마 <정도전>이 지난 6월 막을 내렸습니다.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자 노동전문가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정현민 작가였기에 빛나는 작품을 쓸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정현민 작가가 효성중공업 창원공장에서 감속기를 만드는 효성인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작품과 인생관, 효성과의 인연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정현민 : <정도전>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만들고 기틀을 잡은 ‘혁명가’이자 ‘정치가’이며 ‘사상가’인 정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대하드라마입니다. 정도전은 조선 법제의 근본이 된 <조선경국전>을 포함한 많은 사상과 조선의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분야의 뿌리가 된 인물입니다. 정도전과 배경이 되는 역사를 과거의 한 자락으로만 보지 않고 오늘날의 현상과 맞물리는 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한 만큼,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신 듯합니다.







정현민 : 1987년 6월 말,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제가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 3학년일 때였어요. 실습을 위해 효성중공업 창원공장으로 첫 출근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감속기를 만드는 현장에 배치되었는데, 부족함이 많았을 거예요. 

 

많은 선배들이 가족같이 대해주셨습니다. 실수할 땐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나기도 하고, 방황할 땐 “우리 막내가 힘든갑네.” 하고 넓게 이해해주셨습니다. 일이 많던 시기엔 늦게까지 잔업도 잦았는데, 그런 날엔 국밥에 막걸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당시 창원1공장 내 구내식당 밥이 무척 맛있었던 기억도 납니다. 주방장님을 “두칠이 형”이라 부르며 얼마나 밥을 많이 먹었던지, 믿기지 않겠지만 효성에서 일하는 동안 키가 10㎝ 넘게 컸어요. 시대적으로 좋지 않은 일들도 많았지만 서로 북돋아주는 분위기 속에서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저 다듬질 기능사 자격증과 프레스금형 기능사 자격증도 있는 남자입니다. 지금도 현장에 투입된다면 바로 감속기를 만들 수 있을 것처럼 기억이 생생하네요(웃음).  





 


정현민 : 1988년 당시에는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 출신 동기들만 해도 50여 명이 있었던 터라 추억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88동기회’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한번은 ‘다섯손가락’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다니던 저희 동기 다섯 명이 일요일 산행대회에 참여했습니다. 원주 치악산으로 향하는 1호 버스엔 공장장님이 타고 계셨는데, 저희 다섯손가락 일행이 사회를 보기도 하고, 공장장님과 부장장님들, 미모의 여직원분들께 노래도 시켜가며 시끌벅적한 시간을 보냈죠. 다섯손가락 멤버 중 한 명인 온성기 사원은 현재도 전력PU 창원공장 품질보증팀에 근무하고 있어요. 제가 어려울 때 도움을 많이 준 친구이자, 제 효성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합니다.   




 


<정현민 작가가 1989년 3월 사보 <曉星>에 게재한 ‘사우가 들려주는 지역 생활 이야기’ 코너. ‘고향은 다 달라도 동료애 뜨거운 곳’이라는 제목의 르포라이터 정현민(효성중공업 창원공장 감속기부 제작과)의 글을 볼 수 있다. “암흑 속에서도 의연히 불타고 있는 공장의 불빛과 맹렬한 굉음은 왠지 가슴을 설레게 한다.”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정현민 : 어릴 때부터 책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제법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어느날인가, 공장 안에 비치된 사보 <曉星>을 각 공장의 반장님들이 열심히 읽고 계시는 걸 본 거예요. 읽을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사보 열독률이 무척 높았습니다. 마침 그때 재미 삼아 사보 <曉星>에 콩트를 냈는데 많은 분이 재미있게 봐주셨나 봐요. 그 이후에도 종종 본사 홍보팀에서 사보에 글을 실어달라고 연락이 오기도 했고, 나중에는 창원공장 노보 <해돋이> 창간 멤버로 활동하게 되었죠. 노보를 한창 만들고 있을 무렵에 우연히 취재 나온 신문기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뭔가 부럽단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가면 글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입 준비를 병행해서 90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지금의 운명을 만들어준 데 효성이 아주 많은 역할을 한 셈입니다.  






 

정현민 : 정치권에서 10여 년간 정치가들을 보좌했어요. 정무 파트보다는 주로 정책 파트에 있었고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동정책 담당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지인의 추천으로 집 근처에 있던 작가 교육원에 다니게 되었죠. 가기 전까지는 ‘용기’가 필요했는데, 글 쓰는 방법을 배우면서 사랑 얘기, 사람 얘기를 하니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어요. 보좌관과 작가 교육을 병행하던 시기에 덜컥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 당선됐는데 ‘한 번 정도는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향했죠. 


제가 의외로 신중한 사람이어서 쉽게 결정한 것이 아닌 합리적인 판단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작가를 시작할 때부터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내신 2등급 작가’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대하드라마 <정도전>으로 많은 관심이 쏟아져 조금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제가 만든 결과물이 여러 곳에서 회자된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요. (인터뷰하는 중에도 강의와 인터뷰 요청 전화가 이어져 그의 인기를 실감했습니다.)  




 

정현민 : 드라마 대본을 쓸 때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감각이 중요합니다. 경험으로 성패를 가른다, 경험이 힘이다 같은 말들을 자주 하거든요. 디테일한 경험들을 드라마에 녹였을 때 관객들은 바로 반응합니다. 그래서 경험도 쌓을 겸 여행을 다녀오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 오늘 여권 사진 찍으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이야기가 길어졌네요(웃음).



 글 : 이윤정(지원본부 홍보3팀 대리), 사진 : 전문식(Day40 Studio), 장소 협조 : 효성IT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