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통해 본 사회 경쟁 속에서의 인간성

효성/사람

  



"정직한 사나이의 말 한 마디는 자기앞 수표와 같다. 어떤 직업이나 장사든지

어느 정도의 정직을 보이는 것이 그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정직'이란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음.'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결같이 굳게 지켜나가는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영화 속 체 게바라는 '어느 정도의' 정직과도 타협하지 않은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제는 자본주의 상업화의 아이콘이 되어 버린, ‘여행기 다이어리’의 저자 체 게바라는 한국에서도 대중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그는 1960년대, 쿠바에서의 정치 혁명 성공 이후 2인자의 자리를 버리고 콩고에 게릴라 작전을 수행하러 떠납니다. 


그의 대쪽 같은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일화를 하나 소개해 드릴까요? 간부인 체 게바라가 배식을 받던 중이었습니다. 어떤 병사가 앞선 행렬보다 자신에게 더 많은 음식을 떠 주자, 그는 식판을 내던지며 '너 같은 후레자식 때문에 제국주의의 무도한 권력과 자본 앞에서 민중이 희생되는 거야. 당장 꺼져!'라고 외쳤습니다.

 

 

모터사이클다이어리



영화에서 젊은 시절의 체 게바라는 6살 위인 학교선배와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 일주를 위한 여행길에 오릅니다. 도중에 형의 제안으로 게바라의 여자친구가 사는 곳에 들러 하루를 머물기도 하는데요. 헤어질 때 여자친구는 '미국에 도착하면 자기 수영복을 사오라'며 3달러를 줍니다. 


여행 중 형은 배고픔에 못 이길 때마다 그 돈으로 포식 한 번 하자고 구걸을 합니다. 하지만 체게바라는 매번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리고 칠레의 광산촌으로 가는 사막 길에서 어느 한 부부를 만납니다. 의식주는 물론이고 생계조차도 그날의 광산 십장의 선택에 달려 있는 그 부부에게, 게바라는 여자친구가 준 돈을 선배 몰래 기부합니다.

 

 

무한경쟁



미디어가 만들어준 우상이든 실제 영웅이든 간에, 영웅은 자신이 우상 시 되는 것을 원해서 과잉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국에서 노동자 권리회복을 위해 분신 자살한 전태일의 행위는 역사의 영웅으로 남기 위해서 벌인 청춘의 치기가 아니었을 겁니다. 영화 속 '체'도 단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반인과 한센병 환자가 나뉘어져 있는 현실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건너편 환자촌으로 헤엄 쳐가서 그들과 마지막 작별을 했을 것입니다.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무한 경쟁 속에서, 사회인들에게 '인간성'의 본래 의미는 퇴색된 게 아닐까요. 도대체 왜 학생은 학교에서부터 1등 아니면 낙오된다는 사실을 주입받고, 사회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는 관계없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규격에 맞춰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걸까요?  지금의 교육과 경쟁은 학생과 사회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교육 관료와 사회 기득권층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육이 시험 중심으로 돌아가고 능력의 평가가 숫자와 평판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그런 평가 방법이 '관료주의'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물질만능주의



자본주의 아래서는 1등 기업만이 챔피언이 되고, 나머지 2등 이하 기업은 '10년 내에 소멸할 기업 리스트'의 한 줄에 불과한 것일까요. 첫 번째만 살아남는 사회라며, 매일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류 책과 매년 업데이트되는 영어수험서. 그것들을 양심의 갈등 없이 선택하도록 떠들어 대는 대중매체들은, 우리 삶의 방향을 가리켜주는 나침반이며 동시대인들과의 상대속도를 비교해주는 속도계입니다. 과연 목적지까지 최단경로만 나타내주는 내비게이션들이 나를 1등으로 만들어 줄까요.


인간 이성의 힘으로 발견한 절대적 법칙에 의해,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사물이 되는 현상. 이성에 대한 자존심으로 부풀어 오른 결과 그 자존심 가운데서 인간 자체가 사라지는 추세를 두고 지금 이 사회는 '스펙지존' 사회라 부르기에 적당합니다. 인간을 인간 자체로 보지 않고 그 사람의 '태그'에 매겨진 몸값 정도로 판단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들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삶을 사는 게 가장 큰 목적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고 더 큰 욕망을 꿈꾸는 것은 사회의 문화 및 복지 수준과 인간의 교양에 따라 달라지는 부차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양심



하지만 남들처럼 사는 게 힘들지 않은 인간들은 왜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써의 규모 키우기, 상식 이하의 자산 늘리기, 교양 없는 승리에만 혈안이 돼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뒤쳐지는 것이 곧 도태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함께 커가는 것은 뒤쳐지는 것과 분명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죽을 때까지 줄서기라는 행렬의 감옥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인간이 로봇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던 인물로 알려진 체 게바라도 영화에서는 여자친구가 준 돈을 광산촌의 유목민에게 쥐어줄 수 있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현세기 인류가 완벽한 이성을 기초로 작동하는 로봇이 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라면,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되었듯 결국 인류도 '인간에서 로봇으로' 진화하는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각자의 태그는 '인간과 개성'이며, 찍히는 바코드의 모양은 인간성의 두께와 다양한 적성으로 분류되어야 합니다. 


당신을 다른 모두처럼 만드는 사회에서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이 된다는 건,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싸움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겠지만, 저는 모두가 '나 자신이 되려는 의지'를 존중하는 사회를 꿈꿉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