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와 함께하는 공감 인터뷰] 좋아해라 그리고 즐겨라 '영화번역가 이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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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 함께하는 공감 인터뷰]
좋아해라 그리고 즐겨라
'영화번역가 이미도'
 


 

"재능은 노력을 이길 수 없다."

문장으로 기억되는 영화는 늘 번역가 이미도님과 함께였습니다.
 <블루> <인생은 아름다워> <슈렉> <시카고> <식스센스> 등 흥행 가도를 달리던 영화들이 그를 빌려 우리에게 닿았습니다. 그 덕에 “기적을 보고 싶나? 자네 자신이 기적이 되게”(<브루스 올마이티> 中) 같은 대사를 만날 수도 있었죠. 그러기를 18년, 이미도는 이제 웬만한 이들에게는 익숙합니다. 수입 외화의 80%를 독점한다는 오해마저 생길 판인데요, 한마디로 업계 최고입니다. 그래서 외화 번역을 업으로 삼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하신다는데요, 이미도라면 대단한 해법이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겠죠? 이미도님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 그 일을 즐겨라!" 싱거우리만치 뻔한 답변이지만 그것이 진정 그의 노하우겠죠.



“아버지는 어린 저를 데리고 종종 극장을 가셨어요. 초등학교 아들이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재미있게 공부할까 고심하던 아버지의 생각이셨죠. 일을 놀이처럼, 놀이를 일처럼 하는 게 최고라는 생각은 그때부터 하게 됐죠.”

처음 영어를 배울 땐 고달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낯선 언어에 주눅이 들었고, 그때마다 독학으로 영어와 스페인어 2개에 능통한 아버지께서  "언어란 게 절대 쉽게 배워지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어린 이미도는 한 단어를 외우려고 16절 갱지 5장을 앞뒤로 빽빽하게 채우곤 했고, 영어책을 소리 내 읽는 건 기본이었습니다. 철자를 안다고 해서 저절로 이해되는 게 아니라 발음해 보지 않은 단어는 절대 알 수 없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됐었습니다. 노력도 재능이라더니 그 말이 맞았습니다. 다만 윤활유 같은 요소 한 가지가 더 필요할 뿐이었는데요, 그건 바로 즐거움이었습니다.

“영어로 주고받는 게 재미나서 하루 종일 극장에서 놀다가 아버지에게 눈물 쏙 빠지게 혼난 적도 있어요. 영어도 영화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였거든요. 차선으로 아버지와 함께 영어책을 읽으며 ‘이게 어떤 상황의 이야기일까’ 상상하기를 즐겼어요. 그렇게 접한 영어와 영화라서인지 지금도 일이 즐거워요.”



"책임감은 지구력이다."

그는 노는 것처럼 일해야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출판이나 강연도 그 연장선입니다. 영화가 좋아서 마냥 매달렸더니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졌고 그래서 글을 써서 책을 냈으며 그러한 창의적인 과정을 여러 사람 앞에서 강연하게 되더라는 것. 슬쩍 들으면 ‘그놈 참 운이 좋구나’ 싶은 후일담인데요, 네^^ 맞습니다. 그는 운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 운이 거저 굴러들어온 복덩이 호박은 아니라 외려 갈고닦느라 몰입한 시간에 비하면 박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느끼는 건 영화, 출판, 강연이 제각각인 것 같아도 다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에요. 오랫동안 꾸준히 하나만 파고들었더니 그것과 연결된 작업을 할 수 있었을 뿐이죠. 지속성을 잃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거예요. 내 인생과 일에 대한 책임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기회죠.”

영화 번역을 하면서 ‘No. 1’보다 ‘Only 1’을 추구했던 게 지금의 입지를 불러왔습니다. 그는 창조성이나 혁신의 바탕에 ‘Only 1’이 숨 쉬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자신이 부각된 건 바로 그 ‘Only 1’ 때문이었다고 덧붙였는데요, 물론 그런 이미도에게도 위기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고를 놓치면 어쩌나 싶은 불안은 아니었으며 그가 두려웠던 건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앞으로 얼마나 할 수 있을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늘이 정한 수명은 어쩔 수 없다지만 노동 수명은 연장하고 싶었고 마침 그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저서 <월든>이 떠올랐고 ‘적을수록 부자다’라는 각성에 이르렀습니다.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시간을 줄이자는 심산에서 짐을 꾸렸으며 일과 함께인 시간을 즐기려고 택한 곳은 부산으로 8권의 책을 탈고할 때마다 머물렀던, 영화 <일 포스티노>를 떠올리는 해운대 어딘가로 무작정 떠났습니다.
 
“알랭 드 보통이 그랬죠. 창의적인 생각이란 굴 속에 들어가 있는 수줍음 많이 타는 동물을 닮았다고, 그 수줍음 많이 타는 창의적인 생각은 일상이 아닌 낯선 곳을 여행할 때 궁금증을 품고 밖으로 나온다고. 신기하게도 내가 그 경험을 했어요. 부산에 오니까 이제까지와는 다른 착발상이 떠올라요.”


"용기 없이 무엇도 변하지 않는다."

자율적 유배를 떠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무 자르듯이 쉽게 자를 수 없는 게 자본주의적 삶이었으므로. 쓸데없는 걸 버리는 건 쉬웠으나 덜 필요한 걸 버리기는 어려웠습니다. 바로 그때 이미도는 애니메이션에서 배운 ‘C의 연상법칙’을 떠올렸는데요, 그것은 ‘창의성(Creativity)은 변화(Change)에서 나오고, 변화는 도전(Challenge)에서 비롯되며, 도전은 선택(Choice) 없이 불가능하고, 선택은 용기(Courage)로부터 탄생한다’는 이미도만의 오랜 공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책임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는데 그건 자기 삶을 유기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책임감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의 삶이니까요. 장담하건대,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겠다는 책임감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의 삶은 창의적으로 발전하게 돼요. 만약 일이 재미없거나 삶이 지루하다면 자기 삶을 어떻게 책임질지 생각해보기 바라요.”

이미도는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비교할 수 없는 각자의 고유한 개체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어떤 사람도 경쟁 대상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이 뛰어넘을 산이요, 헤엄쳐 건널 강입니다. 장애물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존재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영화 번역도 책도 강연도 그 시작은 항상 “Would You?”였어요. 한번 해보실래요? 그때마다 저라고 왜 두렵지 않았겠어요. 낯섦은 설렘과 동시에 불안을 동반하잖아요. 용기가 필요했죠. 어떻게 용기를 끌어올릴 수 있었느냐고요? 꾸준히 준비해왔기 때문이죠.”

일처럼 놀고 놀면서 일하기를 꿈꾸는 이미도. 그의 일상엔 두려움이나 불안 따위는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충분히 살기 때문입니다. 더 재밌고 더 알찬 삶을 위해 노력하고 무엇보다도 낙천적인 삶을 디자인하려고 몇 번이고 발을 구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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