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 갑니다] 세계 와이너리 여행가 배두환․엄정선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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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루아란 포도가 자라는 데 영향을 주는 지리적인 요소, 기후적인 요소, 포도 재배법 등을 포괄하는 단어입니다. 즉 와인의 맛과 향은 테루아에 의해 결정되지요. 배두환·엄정선 부부의 테루아는 자신과 상대에 대한 신뢰 그리고 삶에 대한 확신으로 충분히 비옥했습니다.



 세계 와이너리 투어에 도전하다



배두환·엄정선 부부는 1년여 동안 세계 와이너리 산지 283곳을 여행한 범상치 않은 이력을 지녔다. 특별해지려고 한 일은 아니었다.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할 수 있을 때 실행에 옮겼을 뿐이다. 그런데 그 여행이 이 둘의 인생을, 관계를 꽤 특별하게 만들었다.


“저희가 운이 좋았어요. 국내에서 세계 여행을 와이너리 투어로 다녀온 사례가 없는 거 같더라고요. 그런 점이 돋보였는지 여행을 계기로 책 집필 등의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운’이라는 그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인생을 흔들림 없는 눈으로 직시하는 두 사람을 마주하면 그 ‘특별함’에 각별한 노력이 수반됐음을 알 수 있다. 와인 관련 일에 종사하던 둘은 보다 심도 있게 와인을 공부하기 위해 진학한 대학원에서 만났다. 엄정선 씨가 고등학교 때부터 품었던 ‘세계 여행’의 꿈을 말하자 배두환 씨는 ‘와이너리’라는 단어를 더했다. 함께 ‘세계 와이너리 여행’을 떠나자는 말은 곧 프러포즈가 됐고 둘은 그다음 날 바로 여행 자금과 결혼 자금을 모을 계좌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2년, 대학원 공부와 일을 병행하고 저축에 집중하는 등 여느 연인들의 데이트처럼 화려하고 맛있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결혼을 하고 여행을 준비하던 꿈 같은 나날이었다.





 삶에 단 하루도 정체된 날은 없었다


호주, 칠레 등 14개국을 다니는 동안 와인을 알고 서로를 알았다.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묻는 이도 많았지만 부부는 무언가를 포기하고 떠나온 것이 아니었다. 평생을 함께할 키워드 ‘와인’을 숙성시키기 위해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 것뿐. 게다가 그 길에 인생의 동반 자가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다른 부부보다 빠르고 농밀하게 서로를 알 수 있었던 건 여행의 또 다른 소득이었다. “여행 내내 붙어 있으며 몇 년에 걸쳐 알아갈 분량을 1년 만에 안 만큼 깨달음이 더 컸죠. 그 중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배웠습니다.” 



관심사는 비슷해도 삶의 방식까지 일치하는 타인이 얼마나 있을까. 세계 여행이라는 대전제로 의기투합했지만 아주 사소한 점까지 서로 다르다는 걸 발견했다. 마음이 상하는 순간도 많았지만 부부는 서로를 탓하기보단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걸 택했다. 그것이 이 부부 삶의 방식이었다. “저희 둘 다 20대 중반부터 자립해서 살아왔어요. 그래서 어떤 일을 정하는 데 있어 그 선택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죠. 선택하면 반드시 실천에 옮기려고 하고요. 그 일을 하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누군가를 탓하지 말자고 얘기하곤 해요.”



효성인이 궁금해 한 그들의 이야기


Q. 배낭여행 국가를 추천해주세요. 교통이 편리하고 언어에 어려움이 많지 않은 곳이면 합니다.

A. 자연을 좋아한다면 뉴질랜드, 문화와 역사를 좋아한다면 영국, 비경을 원한다면 크로아티아를 추천합니다. 뉴질랜드는 다시 갈 계획을 세우고 있을 만큼 아름다워요. 영국은 물가가 비싸다고 하지만 박물관등이 공짜여서 경제적이죠. 크로아티아는 TV 화면에서 보는 건 실제의 반도 안 될 만큼 멋져요.


Q. 와인을 잘 알지 못해도 좋은 가격대의 와인을 골라 선물할 수 있을까요?

A. 소믈리에에게 선물 받을 사람을 자세히 묘사해주는게 좋아요. 연령, 성별, 식사 취향 같은 것들이요. 또 하나의 팁은 선물 받을 사람과 연관된 이야기가 있는 와인을 골라 그 이야기를 프린트해서 함께 선물하는 거예요. 상대에게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겁니다.


Q. 오랜 시간 함께 여행하다 보면 싸움도 잦았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A. 저희는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존댓말을 쓰고 있어요. 덕분에 화가 나도 심한 말을 자제하게 되죠. 또 한 가지는 서로 먼저 손을 내밀려고 해요. 손을 잡으면 마음이 거짓말처럼 누그러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생각보다 쉽진 않지만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노력하죠.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만큼 참을 수 없이 불안해질 때도 있다. 그럴 땐 와인을 들고 마주 앉아 하루는 프랑스를, 또 이탈리아를 안줏거리로 꺼낸다. 꿈을 꾸는 데 그치지 않고 이뤘단 사실은 두고두고 곱씹을 묵직한 경험을 안겨줬다. 그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도 다녀와서도 한시도 멈춰 있던 적은 없었다. 꼼꼼히 기록해둔 이야기들은 조만간 와인 세계 일주 바이블로 출간될 예정이고 여행과 와인 공부, 와이너리 가이드 등 또 다른 도전들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결혼에 수반되는 여러 현실적인 제약이 생기겠지만 그때는 나름의 최선을 택할 것이다. 이들에게 인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므로. 와인을 가장 잘 아는 방법은 우선 잘 마시고 음미하고 즐기는 것이다. 배두환·엄정선 부부는 자신을 알고 상대를 느끼고 함께 즐기며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그들만의 테루아를 일구고 있다.



글 | 진현영

사진 | 박해주(Day40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