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 소설 속의 중국, 진짜 중국
“조정래의 <정글만리>를 보니 중국에는 술집 여종업원이 1억 명이나 된다는데 사실이에요?”, “스모그가 지독한데 어떻게 사나요?”
4년 7개월의 베이징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해 9월 이후, 회사 안팎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흔히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술집 여종업원이 전체 인구(약 13억 5,000만 명)의 7.7%에 이르는 사회가 온전히 존립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세계사의 불가사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겨울철 며칠씩 계속되는 베이징의 스모그가 결코 가볍지는 않지만, 건강한 사람이 견뎌내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자동차가 급증하던 1990년대 서울 역시 뿌연 스모그 천지였습니다.
2003년 상하이에서 1년간 연수 받은 것을 포함해 중국에서 꼬박 5년 7개월을 살면서 느낀 중국은 우리의 고도성장기인 1980~1990년대와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좁은 2차선 왕복도로가 어느새 왕복 8차선의 도시고속도로로 넓혀지고, 낡은 아파트 단지가 있던 곳이 거대한 고층 빌딩군과 녹지로 바뀌고, 도심 아파트 단지에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생겨 주민 권익을 위한 데모가 수시로 벌어지고, 널널했던 아파트 주차장에 어느새 차가 늘어 주차 전쟁이 벌어지고…. 고도성장 속에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곳이 요즘의 중국입니다.
상하이로 연수를 떠났을 당시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500달러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것이 작년에는 7,000달러대로 올라섰습니다. 베이징, 상하이, 톈진, 광저우, 선전 같은 동남부 연안의 주요 대도시는 대부분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훌쩍 넘었습니다.
소득이 증가하면서 사는 모습도 우리와 닮아가고 있습니다. 도통 질서라고 몰랐던 이들이 공항과 할인 마트, 영화관 같은 곳에서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새치기하는 중국인들을 외국인들이 제지하곤 했지만, 지금은 중국인들이 직접 나서 호통을 칩니다. 고층 아파트 펜트하우스를 고급스럽게 꾸며놓고 우아하게 사는 중상층 가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밀집 거주하는 지역 주변의 수입식품 상가는 중산층 중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기억 속의 중국이 후진적인 모습으로 남아 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상당수는 유명 관광지를 통해 처음 중국을 접합니다. 안후이(安徽)성의 황산(黃山), 윈난(雲南)성 쿤밍(昆明), 후난(湖南)성 장자졔(張家界) 같은 곳입니다. 이런 곳들은 중국 내 가장 낙후된 지역에 속하지만, 이를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이때 받은 인상이 곧 중국의 이미지로 고착된 것입니다. 시차(時差)도 작용합니다. 해외여행이 활성화된 1990년대에 중국을 다녀온 이들에게는 그 당시에 본 중국이 곧 지금의 중국입니다. 15~20년의 시차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인구 13억이 넘는 중국을 인구 5,000만 명인 우리나라와 같은 규모라고 착각하는 인식상의 오류입니다.
“조선일보도 관영 신문이지요?” 2009년 베이징 특파원으로 막 부임했을 당시, 일선 취재 현장에서 만난 중국 기자들 중에 이런 질문을 해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중국 주요 매체가 당이나 중앙•지방 정부 소속이다 보니, 중국 기자들은 한국에서 지명도가 높다는 조선일보도 당연히 관영 언론일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였습니다. 이들에게 “조선일보는 민간 신문이고, 한국 신문 대부분이 민간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답해주면 깜짝 놀랄 뿐만 아니라 의아해합니다. ‘언론은 선전기관이고 당연히 당이나 정부에서 운영한다’는 시각에 워낙 익숙해져 있어서 한국의 언론 환경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비슷한 인식상의 오류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중국은 인구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27개를 모아놓은 것과 같은 방대한 크기입니다. 지역마다 특성이 뚜렷이 다르고, 경제 발전 단계도 서로 차이가 납니다. 경제가 발달한 동남부 연안 지역은 1인당 GDP가 1만 달러대이지만, 중부 내륙 지역은 6,000~7,000달러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서부 지역으로 가면 그 수치는 3,000~5,000달러대로 떨어집니다. 비유하자면 동부 연안은 폴란드나 터키, 중부 내륙은 태국, 서부 지역은 몽골 등과 경제 수준이 비슷합니다. 산둥(山東)성이나 허난(河南)성, 광둥(廣東)성 같은 곳은 각각 인구가 1억 명 전후로 웬만한 나라 몇 개 합쳐놓은 크기입니다. 현대자동차가 중국에서 구형이 된 아반떼XD와 중국명 위에둥(悅動)인 아반떼HD를 최신형인 아반떼MD(중국명 랑둥, 朗動)와 동시에 팔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구형을 단종하지 않고 가격을 낮춰 낙후된 지역에서 계속 파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은 지난 수년 사이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의제’가 됐습니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국제 무역 질서에 편입된 이후 2010년까지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거둔 무역수지 흑자는 2,000억 달러에 이릅니다. 우리 경제가 IMF 외환 위기를 벗어나고, 우리 대기업들이 세계 일류로 발돋움하는 데 중국이 디딤돌 역할을 한 것입니다. 중국은 지금도 우리 수출의 26.1%, 수입의 16.1%를 차지하는 최대 무역 상대국(2013년 기준)입니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가깝다 보니 우리 증시는 중국 경제 지표의 조그만 변화에도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출렁이고 있습니다. 상당수 우리 기업은 중국 시장 개척에 명운을 걸고 있습니다.
중국 비즈니스의 첫걸음은 중국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지역, 한 측면만을 보고 그것이 중국 전체라고 단정한다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일이 될 것입니다. 최근 한 대기업 임원으로부터 오래된 중국 주재원들을 ‘화둥(華東) 전문가’, ‘화남(華南) 전문가’ 하는 식으로 세분해서 부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중국을 제대로 알고 있는 기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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