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과 품과 체온이 그리운 계절, 가을에 볼 만한 가족 영화 5선
우리말에는 ‘봄 타다’와 ‘가을 타다’라는 표현이 있죠. 전자가 설렘이라면, 후자는 아무래도 쓸쓸함의 정서가 짙습니다. 새싹이 돋아나는 봄과 잎이 지는 가을의 대비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늘 푸르를 것만 같았던 것들이 바래고 바스라지고 소멸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참 그렇습니다. 괜히 고독해지곤 하죠. 그렇게 가을은 우리에게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무언가, 누군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타이어 교체 방법을 묻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말합니다. “이제 너 스스로 방법을 알아봐야지. 아빠가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줄 수는 없단다.” 가을이라 그런가요. 영화 속 대사 한 줄이 마음을 시리게 하네요. 하지만 이 시림 덕분에 우리는 따듯하다는 것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가족의 체온처럼 말이에요.
가을에 보면 좋을 가족 영화 다섯 편을 모아봤습니다. “우리는 가슴을 심실처럼 맞대고”(차주일 시인의 시 「두 번째 심장」 중)라는 말처럼, 이 영화들을 통해 가족과 좀 더 가까워져보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듣지 못 하는 가족을 위해 노래하는 뮤지션의 이야기
<미라클 벨리에>
아빠, 엄마, 여동생 모두 청각 장애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직 맏딸 폴라(루안 에머라)만이 들을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음악적 재능이 잠재됐다는 것을 발견한 뒤, 폴라는 가족과 세상을 이어주기 위해 노래를 시작하죠. 스토리라인부터 감동적인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출처: 네이버 영화(https://goo.gl/YVNkMB)
“적어도 두 번은 울게 된다”, “청소년과 부모가 함께 볼 장애영화의 수작”, “거리낌 없는 눈물을 실컷 흘리고 싶다면”, ···. 국내 평론가들의 단평들이 더욱 기대감을 높여주네요. 2014년작 <미라클 벨리에>는 ‘어떻게든 당신들을 울리고 말겠어’ 식의 신파극이 아닌,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게 감동의 온도를 서서히 끌어올리는 작품입니다. 부모가 딸을 바라보는 시선과 딸이 부모를 생각하는 감정을 고르게 포착하기 때문에, 가족 모두를 위한 성장 영화로서 손색이 없답니다. 가을 저녁, 식구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관람한다면 어떨까요.
엄마도 딸도 결혼하고 싶은 계절, 외롭고 여린 모녀의 사랑 찾기
<가을 햇살>
아빠 없이 엄마와 단둘이 사는 딸은 언제까지나 이렇게 모녀끼리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재혼을 원하고 있음을 알게 되죠. 못내 서운해진 딸은 자신도 결혼을 해버리겠다고 선언합니다. 사이좋았던 두 여자를 어떻게 회복시키나 고민해준 건 바로 딸의 친구들. 이렇게 모녀를 모두 결혼시키기 위한 계획이 시작됩니다.
출처: [위] The Guardian(https://goo.gl/mbX5AS)
[아래] WorldsCinema.org(https://goo.gl/qoygPN)
엄마를 혼자 놓아둘 수 없는 딸과, 이런 딸이 가여우면서도 자신의 사랑을 찾고 싶은 엄마의 관계가 정감 있게 그려진 작품이에요. 일본 영화계의 거장이자 세계적으로도 존경받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1960년작입니다. 가족 영화를 많이 만든 연출가이기도 한데요. 특히 <가을 햇살>은 웃음과 애잔함이 잔잔히 흐르는 드라마 구성으로 진한 잔상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성공한 사업가, 엄마 같은 가정부가 전하는 인생의 빛
<심플 라이프>
누군가에 대해 “이분은 제게 가족 같은 분이셔요.”라고 소개할 수 있는 사람, 여러분께도 혹시 있나요? 꼭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어떤 타인은 소중한 ‘가족’처럼 내 삶에 영향을 주곤 합니다. <심플 라이프>는 그런 이야기예요. 정신없이 바쁜 사업가 로저(유덕화)와, 그의 집안에서 4대째 가정부로 지내온 아타오(엽덕한)의 관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병을 얻은 타오를 엄마처럼 돌보는 중년의 로저. 그런 로저를 아들 같이 여기며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타오. 이 둘이 가족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출처: 네이버 영화(https://goo.gl/5QWhmg)
<심플 라이프>는 혈연으로서의 가족이 아닌, 교감하는 타인으로서의 새로운 가족 형태를 제시하는데요. 이런 맥락에서 한국 영화 <가족의 탄생>, 일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세 작품을 나란히 감상해보시는 것도 유의미한 시간을 마련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피아니스트 엄마와 외로운 딸, 뒤늦게 펼친 가족이라는 악보
<가을 소나타>
명망 높은 피아니스트 샬롯(잉그리드 버그만)은 오랜만에 만난 큰딸 에바(리브 울만)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장애를 가진 둘째딸이 요양원에 방치돼 있다가, 얼마 전부터 에바의 집에 함께 지내고 있었다는 것. 에바는 자신과 여동생을 등한시한 채 피아노만 바라보는 엄마가 밉기만 합니다. 샬롯의 내면엔 딸들에게 미안한 마음뿐 아니라, 피아니스트로서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의욕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죠. 모녀는 오랜 시간 털어놓지 않았던 서로의 마음속 악보를 뒤늦게 펼쳐 보입니다. 조심스레 연주되는 엄마와 딸의 ‘소통’ 이중주. 불협화음이 이어지지만, 그렇게 조금씩 모녀의 가을 소나타는 희망의 선율을 내기 시작합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https://goo.gl/IIhaeK)
이 작품을 연출한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은 인간 감정에 대한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통찰로 유명한 거장이에요. <가을 소나타>에서는 엄마와 딸의 갈등으로써 ‘가족 안에서의 개인’이라는 주제를 고민해보게 합니다. 가족의 일원이자 ‘나’라는 객체일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에요.
엄마를 추억하며 요리하는 어느 귀농 소녀의 이야기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전형적인 도시 사람이었던 주인공 이치코(하시모토 아이)는 어찌어찌하여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옵니다. 삼 시 세 끼 자급자족의 삶을 살아보기로 한 그녀는 부지런히 농사를 짓고 자연식 밥상을 차려내는데요. 이쯤 되면 귀향이라기보다 ‘귀농’이 더 맞는 표현 같네요.
출처: 네이버 영화(https://goo.gl/KtceXA)
영화는 이치코가 각종 식재료를 준비하는 모습과 요리 과정을 느긋하게 보여줍니다. 별다른 갈등도 위기도 없는 편안한 이야기 구조입니다. 여기까지만이었다면 그저 단조로운 귀농 일기에 지나지 않았겠죠. 하지만, 이치코의 모든 생산 활동에는 엄마의 존재가 극적 요소로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유일한 갈등이라 할 만한 부분은, 이치코가 엄마의 음식 맛을 제대로 재현하지 못 해 고민하는 대목일 거예요. 요리라는 일상적 행위에서 차근차근 엄마를 느껴본다는 설정이 참 담박하고 곱습니다. 편안하게 감상하다 보면,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가족의 흔적들이 매직아이처럼 선명히 보이게 될 거예요. 여름과 가을 편의 다음 이야기를 담은 <리틀 포레스트: 겨울과 봄>에서는 엄마의 이야기가 좀 더 자세히 펼쳐집니다.
가족에게 다가가기 좋은 계절, 가을
회사 일과 생활에 몰두하다 보면, 회사 일과 생활에 몰두하기 전에 익숙했던 환경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져갑니다. 이를테면 가족과의 저녁 식사 같은 것이죠. 더 멀리, 어린 시절로 시간을 돌려본다면, 엄마 옷에서 나던 피존 향, 아버지의 양복 냄새 같은 것들.
따듯함이 필요한 계절입니다. 가족의 곁과 품과 체온이 문득 그리워지는 가을입니다. 실은 오늘 소개해드린 가족 영화들은 굳이 찾아 보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더 훈훈한 현실의 가족 영화가 여러분 곁에서 상영 중입니다. 그 영화를 소중히 감상해보는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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