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랑 바다랑 길이랑 나랑’ 해파랑길에서 여름을 걸어봐
길을 만들며,
길의 흔적을 남기며,
이 길이 다른 누구의 길과 만나길 바라며,
이 길이 너무나 멀리
혼자 나가는 길이 아니길 바라며,
누군가 섭섭지 않을 만큼만
가까이 따라와주길 바라며.
최승자 시인의 「詩 혹은 길 닦기」라는 시 마지막 연입니다. 스스로 만들고 걸어가야 하는 이 길, 이 삶이지만, 나와 똑같이 혼자 걷고 있을 누군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길 희망하는 마음이 느껴지네요. 길을 걸을 때, 그리고 매일매일의 일상을 살아갈 때, 우리 역시 이런 정서를 품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도보 여행’이란 말 그대로 걷는 여행, 걷기 위해 떠나는 여행입니다. 발밤발밤, 성큼성큼, 바람만바람만, 걷는 자의 보폭과 감성, 혹은 체력에 따라 걸음발은 다 다르죠. 혼자 걸을 때는 나 자신에 집중하게 되고, 함께 걸을 때는 타인의 보속을 배려하게 됩니다. 걷기란 이렇듯, 나와 남의 간격을 맞춰가는 매력이 있지요.
이번 여름휴가 일정으로 도보 여행을 계획 중이시라면, 오늘 소개해드릴 곳을 후보지로 선정해두셔도 좋을 듯합니다.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에 이어, 많은 도보 여행자들을 품고 있는 ‘해파랑길’입니다.
해에게서 바다로, 바다에서 길로
‘해파랑길’이라는 명칭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파란 바다를 벗하며 걷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부산 남구의 오륙도 해맞이 공원(오륙도 스카이 워크)부터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700km 길이의 트레킹 길입니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각 지자체, 지역 민간단체가 더불어 정성껏 닦은 길이라고 해요. 총 10개 구간 50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금도 계속 조성 중입니다.
전체 코스를 모두 이으면 그야말로 대장정이라 할 만한 거리인데요. 그만큼 출발지, 즉 10개 구간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풀코스 완보가 아니라면 어느 구간에서 출발하든 충분히 도보 여행의 기쁨을 만끽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각 구간별 코스 정보를 간략히 정리해드리겠습니다.
해파랑길 시작점인 오륙도 공원의 안내소
오륙도 공원에 펼쳐진, 하늘과 맞닿은 길
가장 자연스로운 속도, 걷기
사람은 본래 걸어다닙니다. 보도는 있지만 ‘주도(走道)’는 없지요. 걷지 않고 뛰는 건 특별한 행위로 간주됩니다. 스포츠 종목처럼요. 또한, 사람은 천천히 걸어다닙니다. 걷기는 하는데 걸음걸이가 날래면 왠지 좀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것은 도보가 아니라 속보(速步)로 간주되지요. 남을 제치기 위해 빨리 달리거나 걷는다면, 자연스러운 걷기라 보기 힘들 것입니다. 걷기란, 말 그대로 그냥 걷는 것이니까요. 날마다 속도전을 치르며 살아내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잘 걷고 있을까요. 어른들도 걸음마를 다시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올여름엔 해파랑길을 걸으며 그동안 잊고 있던 자신의 보폭을 확인해보는 건 어떨까요. 해와 바다가 우리 편이 되어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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