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여덟, 이종범 신입사원 이야기] ② 사랑하는 우리 엄마
저희 어머니께서는 얼마 전 다리 수술을 하신 친할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3주째 여수에 있는 한 병원에 내려가 계십니다. 늘 곁에 존재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게만 여겼던 어머니의 존재와 감사함을 새삼스레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머니에 관한 글을 적어볼까 합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알레르기가 있어 무명옷이 아니면 입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다른 옷감이 피부에 닿으면 몸이 간지럽고 부스럼이 났다고. 그는 어머니가 지어준 무명옷만을 입고 자랐다. 그의 기억에 그의 어머니는 늘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속옷부터 양말까지 직접 손으로 만들어 입히려면 그래야 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옷장을 열어보니 거기엔 그가 평생토록 입을 수 있는 무명옷들이 쌓여 있었다고 했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그 중 하나라고.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中
▲ 어린 시절, 대가족이 한 데 모여 맛있게 먹었던 홍합탕
어린 시절, 저희 어머니는 엄한 것은 물론 제게 늘 강한 분이셨습니다. 장남인 아버지께 시집와서 시댁 식구들(4남 1녀) 키우고, 결혼까지 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한 분이십니까. 막내 작은 아버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저희 집에서 함께 사셨는데, 잘못을 하면 한 겨울에도 팬티 바람으로 옥상으로 쫓겨났다고 합니다. 저도 동생이랑 심하게 다퉜을 때면 팬티 바람으로 몇 번을 쫓겨났는지 모릅니다.
그런 어머니께서도 지금은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2008년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으시고, 2011년에는 아버지께서 일을 그만두시는 바람에 몸과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으셨습니다. 길고 긴 이야기는 ‘모질다’라는 형용사로 대신하겠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모진 시간들을 견디고 견뎌 세월을 이겨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도 힘드셨을 것입니다. 저 역시 지금에서야 어머니를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머니는 평생을 가족만을 생각하면 가족만을 위해 살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평생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남 좋은 일만 하셨지만, 그에 비해 어머니 당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합니다.
2년 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글을 막 배우기 시작하신 어느 할머니께서 쓴 시가 인터넷에 올라와 회자된 적이 있었습니다. 글을 쓰려고 시를 다시 읽는데,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리고 ‘저 세상에서는 부자로 만나자’는 말이 마음을 아리게 만듭니다.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빚을 졌다고, 어머니를 지켜야 된다고 다짐해도 허울 좋은 생각에만 그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입사 후 매달 170만원씩 어머니께 드리고 있는데, 돈으로써 자식 된 도리를 다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친구들을 마주할 때마다 부모님의 안부를 챙겨 물어보면서, 정작 우리 어머니께는 그러지 못 했던 아들이라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의 건강과 안녕, 안부를 챙겨주던 많은 사람들의 고마움이 새삼스레 다시 느껴집니다. 단지 인사치레였어도 말을 위한 말이었다고 해도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머리 숙여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 어머니와 팔순을 앞두신 외할머니를 모시고 다녀온 제주도 여행
작년 여름, 외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올해 팔순을 맞이하신 외할머니께서는 일평생 비행기 한 번 타보실 기회가 없었고,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제주도조차 다녀오신 적이 없었습니다. 풍수지탄(風樹之歎)이라는 말처럼, 어머니는 외할머니께서 더 늦기 전에 같이 모시고 여행을 다녀오자고 했습니다. 어린 시절 저의 기억으로는,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애증의 관계였다고 생각됩니다. 언성을 높여 통화하던 때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속상해하고 화를 내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강해 보이는 어머니도 당신의 어머니에게는 막내딸이었습니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저의 아주 오래된 기억 중 하나는, 저희 집 베란다에 있는 의자에 앉아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퇴근하고 돌아오는 어머니를 한없이 기다리곤 했던 장면입니다. 20년도 더 지난 지금, 그때와 살고 있는 집도 같고 베란다에 놓인 의자도 그대로인데, 변한 건 저뿐인가 봅니다. 그때의 저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래서 얼마 전에는 옷 가게에 들러 부모님 옷을 골라 선물해드렸습니다. 당신들의 슬하에서 어리광부리며 놀던 아이가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이 부모님에게도 낯설지 않을까 싶습니다.
▲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온 동생과 아침고요 수목원에서 가족사진
그리고 이번 27일은 저희 아버지 생신입니다.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을 ‘식구’라 일컫듯이, 이번 연휴에는 병원에 입원해 계신 친할머니를 뵙고 올라오는 길에 함께 식사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네 식구가 함께 밥을 먹은 지가 꽤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5시 반에 큰아들 출근한다고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아침을 먹은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문득 어머니의 된장국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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