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조석래 회장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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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래 회장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6편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지만 세월이 흐르더라도 기억의 한 부분을 뚜렷하게 차지하는 분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젊은 날, 그것도 아주 젊은 날 만났던 분들은 늘 기억의 앞줄에 서게 되는데,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조석래 회장님입니다.


1993년 2월 조 회장님이 최종현 SK그룹 회장님의 자리를 이어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입사 3년 차였던 나는 이후 7년여 동안 조 회장님과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3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무엇이든 나라와 경제계를 위해 힘껏 일하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에 조석래 회장님이 늘 함께하셨고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조 회장님을 생각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늘 분주하게 활동하시던 모습입니다. 일본이나 미국으로 출장을 다녀오신 당일에도 마치 부산이나 제주를 다녀오신 것처럼 씩씩하게 업무를 처리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렇게 빡빡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저런 에너지가 나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늘 갖곤 했죠.


더 나은 사업 환경을 조성하거나 더 나은 나라를 만드는 일에 조 회장님은 특별히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열심히 하면 격려도 아끼지 않으셨는데, 그런 격려와 덕담이 전심전력으로 일하는 데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젊은 날 나에게 해주셨던 조 회장님의 말씀은 큰 힘이 되곤 합니다.


현재의 재단법인 자유경제원(구 자유기업원)이 재단법인 자유기업센터로 분리된 것이 1998년 9월의 일입니다. 초대 소장을 맡아 이 일을 주도하긴 했지만 그 뒤에는 조석래 회장님의 도움이 컸는데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일은 상당한 경제적 부담과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기꺼이 시장경제를 널리 전파하고, 대한민국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돕는 조직을 만드는 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조 회장님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후 3년이 지나고 재단법인 자유경제원의 분리·독립 작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도 조 회장님은 일찌감치 기부금을 약속하고 기꺼이 내주신 분들 가운데 한 분입니다. 당시에는 그런 일들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깨우쳤습니다. 공적인 대의를 위해 기부금을 내놓는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 친구라면 무엇이든 잘해낼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선뜻 기부금을 내주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사람의 마음이나 의지는 이따금 변덕을 부리게 되는데, 2000년 1월 재단법인 자유경제원이 분리·독립된 다음에 조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가장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분 가운데 한 분이 조 회장님입니다. 조 회장님이 보여주신 믿음을 제대로 충족시켜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늘 마음 한구석에 부담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후 6~7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기업 생활을 짧게 마무리한 다음 연구소를 만들어 또 다른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었습니다. 2007년 어느 봄날, 회사 직원으로부터 조 회장님이 찾으신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받은 연락인지라 급히 전화를 드리고 효성 본사에 가서 찾아뵈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함께 일을 해보자는 조 회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회장님, 그때 정말 죄송했습니다”라는 말에 조 회장님은 이렇게 답해주셨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저런 실수를 할 수 있네. 나는 이미 다 잊어버렸네. 어디서나 사회와 나라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족하네. 자네는 잘 살고 있어.”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들이 자연스레 덮인다고들 하지만 내 가슴속에는 조 회장님에게 죄송했던 마음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날 들려주셨던 것과 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 덕분에 그 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것들을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사보 <HYOSUNG>에서는 조석래 회장의 업적을 기리는 기고문집 <내가 만난 그 사람, 조석래> 발간을 기념해 일부 내용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는 공병호 소장의 글을 발췌해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