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 팩트체크

즐기다/트렌드 2017.10.25 09:35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입니다. 고종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되었는데요.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널리 알리고 강력한 독도수호 의지를 세계 각국에 드러내기 위해 2010년,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독도의 날을 선포하였어요.


올해 일본 정부는 초∙중등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과 학습지도요령에 ‘2020년부터 일본 교사는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명시했는데요. 일본의 이런 태도를 결코 좌시할 수만은 없겠죠?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독도는 외교 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어요. 일본의 영유권 야욕으로부터 독도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독도가 우리 땅임을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근거가 필요하겠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알아둬야 할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근거를 정리했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 지리적 근거


독도는 경위도 상으로는 북위 37도 14분 18초와 동경 131도 52분 22초 지점에 있는 섬입니다. 행정구역으로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 소속되어 있고, 대한민국의 가장 동쪽에 있는 영토입니다.


 

사진: 구글 지도



울릉군에 속해 있는 우리 땅 독도는 지리적으로도 우리 땅인 근거가 명확한데요. 독도와 가장 가까운 일본 영토(오키섬) 사이의 거리는 157.5km로 일본에서는 독도를 볼 수 없지만,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거리는 87.4km로 맑은 날이면 육안으로 독도를 확인할 수 있어 역사적으로 독도는 울릉도의 일부로 인식됐습니다.


조선 초기 관찬서인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도 ‘울릉도와 독도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요. 기록만 있을 뿐 실측한 기록이 없어 지난 2008년 7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약 1년 6개월 동안 울릉도 주민을 중심으로 독도를 상시 관측하기도 했어요. 그 결과, 월평균 3~4회 이상 독도를 볼 수 있었는데 해무가 많이 끼는 여름보다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나 봄에 더 잘 보였다는 결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와 더욱 가깝고 맨눈으로 충분히 확인 가능한 독도는 우리나라 땅임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 역사적 근거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근거 또한 많습니다. 독도는 6세기 초엽(512년) 신라가 복속한 우산국의 영토라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독도에 대한 통치 역사는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독도는 신라의 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정복한 뒤 지금까지 줄곧 우리의 땅이었지요. 


그런데 17세기 말부터 일본이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를 욕심내며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어요. 조선은 그런 일본과 3년 동안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고, 결국 일본은 1696년에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고 인정했었는데요. 여기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1693년 어부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어업 행위를 하다, 조업권을 사이에 두고 일본인과 실랑이가 붙어 일본 본국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호키(伯耆)州 태수에게 조선인이 조선 영토에 갔는데 무엇이 문제냐며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이로 인해 에도 막부가 그를 조선으로 돌려보냈고, 1695년 12월 25일 돗토리번에 대한 조회를 통해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 모두 돗토리번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돗토리번 답변서), 1696년 1월 28일 일본인들의 울릉도 방면 도해를 금지하도록 지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기록은 많이 남아 있는데요. 『세종실록지리지』(1454년)는 울릉도(무릉)와 독도(우산)가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두 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도에 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 『동국문헌비고』 (1770년), 『만기요람』 (1808년), 『증보문헌비고』(1908년) 등 다른 관찬 문헌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찬조선국전도(1894년)



또한, 일본에서 만든 『신찬조선국전도(1894년)』에도 독도와 울릉도가 한반도와 같은 색인 노란색으로 그려져 있어요. 즉 일본이 ‘독도는 조선의 땅’이라고 인정하는 지도라고 할 수 있지요. 그 밖에도 프랑스에서 만든 『조선왕국전도』, 일본에서 만든 『삼국접양지도』 등 독도가 일본의 땅이 아닌, 우리의 땅임을 나타내는 옛 지도와 자료가 많이 있어 역사적으로도 독도가 우리 땅임을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 국제법적 근거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뀐 후에도 우리나라는 독도에 대한 주권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1900년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도군의 관할 구역을 "울릉전도 및 죽도, 석도(독도)"로 명시한 것이죠. 이로 인해 국제적으로도 독도는 한국 영토로 공표가 되었어요.


 

칙령 제41호(1900년)



이후 일본이 러일 전쟁 중에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며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한다고 공표했는데요. 일본은 이를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국제법적 근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시 대한 제국 정부는 그에 맞서서 독도가 우리의 땅임을 다시 확실히 밝혔지만,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형편이라 이 문제를 바로잡기란 어려운 일이었지요. 이는 명백한 주권 침탈 행위이며, 그로 인해 획득하였다고 주장한 영토는 국제법적으로 무효입니다.


독도가 일본의 시마네현에 강제편입 되기 전 1902년 대한제국 내부대신이 울도 군수 배계주에게 내린 공식문서인 ‘울도군 절목’에는 울릉도에 출입하는 모든 화물에 세금을 받으라는 운영세칙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인들은 독도에서 잡은 강치(물개의 일종)를 울릉도에 가져와 수출했다는 사실이 일본 외무성의 기록에 남아있는데요. 일본인들이 독도에서 잡은 강치에 대한 수출세를 울도 군수에게 납부했다는 것은 대한제국의 행정력이 독도에까지 미쳤음을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또 하나 일본이 주장하는 것은 1951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서 독도는 일본 영토가 됐다는 것인데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결정하기 전, 연합국 합의에서 독도는 한국 영토로 정확하게 기재돼 있었습니다. 조약상 독도 지명이 한국 영토에서 빠진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울릉도가 기재됐기 때문에 울릉도에 속한 섬으로서 기재가 생략됐던 것이죠. 그리고 연합국 중 영국, 호주, 뉴질랜드가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는데요. 미국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시키려고 했던 부분이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일방적인 견해를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전체 견해인 것처럼 일본이 주장하는 것은 악질적인 왜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 근거와 더불어 우리나라는 실질적으로 독도에 주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찰이 주재하여 독도를 경비하고, 우리 군이 독도 영해와 영공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또한, 각종 법령이 독도에 적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등대 등 여러 가지 시설물을 설치,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주민이 독도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에게 독도는 당연히 우리 땅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적인 부분만 앞세우기보다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서도 인정받을 만한 증거를 찾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우리 땅임을 밝히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독도의 날을 맞아 다시 한번 독도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바랍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효성blog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