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갑니다] 김병수 교수의 버티는 삶을 응원하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 중 하나가 스트레스(Stress)라고 합니다. 어느새 일상이 돼버린 그 짐은 가볍게 내려놓을 수도 있지만 하루, 한 달이 지나도록 양쪽 어깨를 짓누를 때도 있습니다. 그 무게를 지혜롭게 버티는 것이 바로 우리의 권리라고 김병수 교수는 말합니다.
슬픔 속에도 행복이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행복은 손안의 모래알처럼 속절없이 빠져나가고 우울함과 허무함만이 내 속을 꽉 채운 듯한 이 기분. ‘내가 뭘 잘못했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자책하고 억울해하는 이들에게 닥터K의 위로가 아로새겨진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당신뿐 아니라 누구나 다 그런 고민이 있답니다.”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한 코너였던 ‘닥터K의 고민 상담소’에서 직장인들의 고민을 해결해줬던 닥터K, 김병수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스트레스 클리닉’을 담당하고 있다. 그렇게 환자들과 만난 지 어느새 8년. 클리닉을 찾는 이들은 직장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김병수 교수가 강조하는 건 ‘스트레스라는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억지로 풀지 말 것’이다.
“클리닉을 찾는 분들은 30~50대 남성이 대다수로 사회생활에서 비롯된 고민들이 주를 이룹니다. 그들에게 저는 그런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임을 상기시켜줘요. 본질적으로 즐거움만 가득하면 좋겠지만 우리 인생이 어디 그런가요. 약간의 불안, 우울함이 섞여 있는 게 자연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해요. 불안하고 우울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나만의 레시피로 행복을 요리하다
스트레스를 자연스럽게 안고 생활하는 것이 김병수 교수가 전하는 실용적 행복 전략이다. 사실 어떤 계기가 없는 한 정신과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여 그는 그 단계까지 이르지 않기 위해 평소에 ‘마음 다지기’를 연습하라고 권장한다. 스트레스에도 견딜 수 있을 만한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어놓으란 얘기. 그는 이를 ‘활동 레시피’라 명명한다.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어야 해요. 이때 주의할 건 생각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이죠. 사람의 감정은 쉽게 바뀌지 않아요. 몸, 즉 오감을 써야 비로소 감정도 자신도 다스릴 수 있어요. 컬러링북, 음악 감상, 운동 등 나를 움직여 오감을 채워줄 수 있는 재료들로 활동 레시피를 만들면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됩니다.”
정신과 의사라고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 역시 자신만의 레시피로 일상에서 행복을 요리한다. 그의 활동 레시피는 조깅과 음악, 그림 감상. 특히 그림은 그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는 특급 조리법이다.
“요즘은 꼭 미술관에 가지 않고 온라인 검색만으로 충분히 좋은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어요. 모니터 속 그림에 시선을 맞추고 있으면 이내 마음도 머릿속도 차분해집니다.”
이런 다독임을 다른 이와도 공유하고 싶어 좋은 그림과 음악을 환자에게 추천하곤 한다. 일례로 그의 책 <사모님 우울증>에는 현대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위로가 50여 점의 그림과 함께 담겼고, <버텨낼 권리>에는 직장인들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음악이 흐른다.
가슴으로 전하는 위로
클리닉에서 김병수 교수의 역할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리스너, 즉 청취자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그들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 기울일 수 있게 했고 그러다 보니 사람과의 관계에서 공감과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그래서일까. 이 열정적인 청취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허투루 들리지 않고 진부하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김병수 교수가 진심을 담아 효성인들에게 추천해주는 음악은 영국 록 밴드 콜드플레이의 ‘Fix you’다. “당신이 최선을 다했지만 성과를 이루지 못했을 때, 눈물이 당신의 얼굴에 흐를 때 … 빛이 당신을 집으로 인도하고 이는 당신을 뼛속까지 밝게 비춰주죠. 그럼 전 당신을 어루만져줄게요.” 이 노랫말처럼 앞으로도 그는 공감과 이해의 혜안으로 현대인에게 따스한 위로를 들려줄 것이다.
효성인이 묻고 닥터K가 답하다 고민 1. 워킹맘으로 회사와 가정을 돌보는 것이 때때로 힘이 듭니다. 어떻게 버텨야 할까요? “우리 시대 워킹맘들에게는 해결할 문제가 참 많죠. 일도 가정도 그들은 완벽하게 충족해야 마음을 놓습니다. 이런 상황을 인정하는 겁니다. 이렇게 충족할 것들이 많으니 당연히 힘든 것이라고 납득하는 거지요. 그러면서 관계성 욕구에 눈을 돌려보는 거예요. 여성은 관계 중심적 동물입니다. 본능이지요. 봉사활동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 자기 관계성을 충족시키다 보면 일이나 육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견딜 수 있을 겁니다.” 고민 2. 최근 교수님처럼 많은 직장인들이 책을 쓰고 싶어 하지만 쉽게 시도하지 못합니다. 교수님의 경험을 토대로 일과 집필을 병행하는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책을 쓰는 것뿐 아니라 자기계발을 하고 싶은데 조직 내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지요? 주말이나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한다고 해도 조직 내에서는 오해할 수도, 안 좋게 볼 수도 있으니까요. 모든 사람이 내 마음 같을 수는 없기에 이러한 갈등은 당연합니다. 그러니 책을 쓴다고 했을 때 내가 상처받을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세요. 그래도 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몰래’ 쓰는 겁니다. 본인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주제나 내용이 공개된다면 완벽하게 다듬어진 단계가 아니라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 조절은 필수입니다. 주말이나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하는데 생각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지요. 준비 기간을 여유 있게 잡고 자기 시간을 희생할 각오를 단단히 한다면 작가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
글 | 백현주
사진 | 박해주(Day40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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