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와의 공감인터뷰] 자기 자신과 오롯이 마주할 때 통찰의 문이 열린다.

2012. 4. 13. 17:37

 

 

 

 

 

만화가 윤태호가 그려낸 삶의 깊이와 넓이를 따라가기 벅차다. 소소한 듯 보이지만 거대하고, 사회적이라서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인다. 작은 한 점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세상의 이치로 개별적 인간을 위로하는 만화라고나 할까. 윤태호를 따라다니는 ‘통찰적 시선’이란 수식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그러한 통찰은 윤태호 자신이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정에서 토해낸 진주이기도 하다.


“작업하거나 아이디어를 찾을 때 매번 그 시작은 나부터예요. 음, 사주나 별자리 같은 걸 공부하기도 했는데 그때도 남의 사주가 궁금하지 않았어요. 남을 보기 이전에, 제 안에 들어 있는 모순이나 부족한 것, 그 와중에 깨알같이 잘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하거든요. 아직도 모색 중이죠.”


그가 빚어낸 주인공들이 내면의 치열함을 품은 건 그를 닮아서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이해하려고 부단히 애써온 윤태호 자신의 삶이 고스란히 작품으로 탄생한 것. 수용할 수 없는 자신의 외모와 그래서 아버지께 떳떳할 수 없던 유년 시절, 가난하고 굴곡진 청소년기, 사회의 주변인으로 살며 꺾은 화가로서의 꿈을 흉터로 남기지 않기 위해 ‘자기이해’가 필요했다. 누군가는 취미로 만화를 배우는데 어째서 자신은 노숙을 하면서까지 차선의 꿈인 ‘만화’를 부여잡는지 오기나 패기가 아닌 부드러운 마음으로 감싸 안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YAHOO>가 나왔다.

 

 

 

 

 

 

 

 

“한번은 별자리를 공부하다가 언제나 제 앞에 거울이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그것 때문에 늘 힘들었던 거죠. 하지만 그 거울을 발견한, 인지한 순간부터 애써 외면했던 부분을 구석구석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저를 보게 된 듯해요.”


사회의 여러 현상을 하나로 꿰어내는 그의 통찰력은 외부에서 오지 않았다. 사회 구성원으로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자 진실이 드러났다. 박탈감과 이질감을 온몸으로 경험한 숱한 현대인은 그래서 윤태호의 작품에 열광한다. 2010년을 뒤흔든 <이끼>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쉽지 않았다. 사회의 부조리와 개인의 모순을 섬세하게 직조하려면 자신과의 싸움이 필수였다.


“아이가 태어나자 행복하니까 제 만화 속 주인공이 싫어지더라고요. 저를 닮은 제 주인공이 평범한 가장을 죽이는 게 너무 싫고. 그때 긴 슬럼프가 찾아왔죠. 빈자의 정서, 마이너한 정서에 의존해 온 사람이 갑자기 긍정의 에너지가 생기니까 어떻게 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끼>는 <YAHOO>와는 다르죠. <미생>은 말할 것도 없고요.”


아이들은 그를 다시 한 번 깊은 통찰로 이끌었다. 밝음이 무언지 제대로 비춰줬다. ‘내’ 아이라서가 아니었다. 선악의 구분 없는 그 자체가 생명인 까닭이었다. 올 초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미생>은 그런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이 가미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선 누구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아주 악의적인 것 빼고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고 입는 상황을, 이해하는 상황으로 만들고 있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이로운, 상생하는 최선의 수를 생각하는 걸 그리고 싶은 거죠. 샐러리맨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통찰은 자신을 아는 과정의 산물이다. 진정한 창의, 뛰어난 상상력은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어느 사회학자의 말을 온전히 몸으로 터득한 윤태호. 그가 만들어낼 화지 안팎의 세상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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