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와 유연의 신세계’ 탄소섬유, 작품이 되다 - 노일훈 작가 인터뷰

2019. 11. 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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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미, 효성의 최첨단 소재로 구현하다


탄소섬유는 강철보다 강하고 알루미늄보다 가벼운 꿈의 신소재입니다. 그 자체만으로는 실(Fiber) 또는 천(Fabric)에 불과하지만 어떠한 재료를 만나느냐에 따라 복합 소재로서의 어마어마한 가치를 발현하죠. 예술 분야라면 어떨까요. 탄소섬유를 사용해 예술 작품을 형상화하는 건축가 겸 디자이너 노일훈 작가를 통해 구현된 작품은 아름답고, 또 경이롭습니다.



영국에서 성장한 노일훈 작가는 2011년 디자이너 명장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런던 아람갤러리의 초대를 받으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세계적 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는 노일훈 작가의 작품 활동을 2년간 지켜본 끝에 그의 초기작 ‘라미 벤치(Rami Bench·2013)’를 소장했죠. 이렇듯 유럽에서 먼저 주목 받은 작가는 2013년 한국으로 둥지를 옮겼습니다.


작가는 그동안 생명체뿐만 아니라 자연현상에서 발견되는 패턴들을 첨단 소재를 통해 구조화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는 자연의 미를 추구하고, 이를 자신의 작품 속에 적극적으로 녹여냅니다. 영감도 주로 자연 속에서 얻는다고 하는데요. 그가 추구하는 작품 방향성에 날개를 달아준 재료가 탄소섬유였습니다. 자연이라는 아날로그적 소재에 최첨단 소재라니 언뜻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죠.


“10월부터 11월까지 계속되는 청주공예비엔날레에 선보인 라미(Rami) 시리즈는 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힘을 세게 줘서 형상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그 힘을 견딜 수 있어야 하고, 제가 원하는 형상대로 만들려면 유연성도 좋아야 합니다. 또 작품이 완성된 후에는 단단하게 굳어 고정돼야 하는데 효성의 신소재 ‘프리프레그(Prepreg, Pre-impregnated Material)’가 딱 그런 특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노일훈 작가의 대표작인 라미 시리즈는 나뭇가지가 갈라지며 뻗어 나간다는 의미의 ‘Ramify’를 어원으로 하며 식물의 생장력을 보여줍니다.


청주공예비엔날레에 전시 중인 탄소섬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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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섬유와 전통 기법이 만날 때


그의 작업이 더욱 독특한 것은 최첨단 소재를 사용하면서 그 기법은 전통 장인의 수공예 방식을 따른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이를 위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장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짚공예, 대나무공예, 지승공예 등을 배우고 공부했습니다. 탄소섬유로 만든 끈을 잡아당기고 꼬아 엮는 그의 방식은 지승공예와 짚공예를 연상시키죠. 또 가열된 화로에서 구조체를 구워내는 방식은 전통 도예에서 가마를 사용하는 방식과 비슷합니다. 탄소섬유 실타래를 일일이 꼰 뒤 열을 가해 굳힌 ‘라미 사이드 테이블’도 지승공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요. 우리네 전통 가구를 닮은 이 작품은 단단하고 견고할 뿐 아니라 가볍기까지 해 실제 가구로 쓰기에도 손색이 없습니다.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 기법은 그것만의 오라(Aura)가 있어요. 그 기법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지속되면서 발전했고, 그것만의 특화 기술로 자리 잡았어요. 저는 전통 공예 기법이 생겨난 배경, 장점, 잠재성을 따져본 후 제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와 맞을 경우 차용해요. 몇 백 년 된 기법을 이어받아 제 작품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기쁘고 설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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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신소재, 예술로 환생하다



작가는 “작품 활동을 하는 데 효성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작품을 제작하려면 주제에 맞게 소재를 극한의 상황이나 환경으로 내몰 때가 있는데, 소재에 대한 특장점이나 공학적 성질 등에 대한 정보와 이해 없이는 원활한 작품 활동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효성과는 2014년부터 연을 맺었어요. 사실 런던에 있을 때 탄소섬유는 말로만 들어본 소재였어요. 우리나라는 탄소섬유를 만드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국가이고, 효성이 직접 제조하고 있으니 정말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이죠. 효성의 아라미드 섬유인 ‘알켁스’로 작업하면서도 많은 자문을 구해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전시된 이 작품은 소재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내년 유럽 전시 계획도 밝혔는데요. 현지 전통 장인들이 알켁스를 이용해 프랑스 전통 공예 기법인 ‘태피스트리(Tapestry)’를 제작하게 될 것이라고 해요. 신소재로 만든 태피스트리는 작가의 작품과 어우러지면서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탄소섬유를 비롯한 신소재로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일 노일훈 작가의 행보가 자못 기대됩니다.


탄소섬유로 작업 중인 노일훈 작가




글. 한율

사진. 박해주(Day40 Studio)

작품 사진 제공. 스튜디오 노일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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