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지친 뇌를 쉬게 하는 법

Story/효성





사무실에서 하기엔 좀 곤란한 두 가지 행동이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기와 잠자기이죠. 사무실 밖에선 수월한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은 듯합니다. ‘오늘은 정말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쉬자’라고 다짐한 순간, 얄궂게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피어오릅니다. ‘아무 생각하지 말자’라는 생각 또한 그중 하나일 겁니다. 그러다 숙면을 놓치는 밤들을 우리 직장인들은 얼마나 많이 보내고 있던가요. 



올해 두 차례나 ‘멍 때리기 대회’가 열렸습니다. 5월 7일 수원 창룡문 앞 잔디광장, 22일 서울 이촌한강공원에서 각각 ‘제3회 국제 멍 때리기 대회’와 ‘2015 한강 멍 때리기 대회’가 개최되었다고 하죠. 여기선 마음껏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하고 공개적∙공식적으로 깔린 멍석인 셈인데요. 이런 대회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개개인에게 규칙적으로 ‘멍 때리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지친 뇌에도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이런, 또 ‘생각’을 하고 말았네요.) 


뇌 쉼, 숨 쉼. 뇌 한 번 쉬고, 숨 한 번 쉬고, 다시 시작해보기.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에게도 필요하지 않나요? 뇌를 쉬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해드립니다.



  1. 뇌를 위한 멜로디, 가사 없는 음악


어학 공부가 선사하는 작은 희열 중 하나는 외국어 노랫말이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어 회화를 배우고 나자 평소 좋아했던 제이팝의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이 독해, 아니 청해(聽解)되는 경험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학습 효과 때문에 적잖은 불편(?)을 겪는 분들도 계신가 봅니다. 영어 회화 실력이 부쩍 향상된 뒤로는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팝송을 못 듣게 되었다는 어느 지인의 이야기 한 토막이 떠오르는군요. 마음으로는 ‘감상’을 하려 하는데, 자꾸만 귀가 가사를 해석하려 한다는 웃지 못 할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연이 어느 정도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모양입니다. 얼마 전 국내 뉴스에도 소개된 독일 연구팀의 실험 결과가 그 방증인데요.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 요한 슈트라우스 왈츠곡, 팝그룹 아바의 노래를 120명에게 들려주고, 각각의 음악을 듣고 난 뒤 나타난 변화를 기록한 실험이었습니다. 모차르트와 요한 슈트라우스를 들을 때는 혈압이 낮아졌는데, 아바를 듣는 동안에는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요. 이 연구팀은 아바의 노래에는 가사가 있어서 뇌 휴식 효과가 줄어들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음악 장르에 상관없이 멜로디 구조가 간단할수록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춰주며, 가사가 없는 음악일 경우 더 효과적이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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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게 휴식을 주고 싶을 때, 뇌에게 ‘생각’이라는 짐을 잠시 내려놓게 해주고 싶을 때, 편안한 자세로 가사 없는 음악을 물 흐르듯 감상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2. 소곤소곤 기분 좋은 닭살, ASMR로 숙면 취해보기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우리 뇌는 수면 중에도 활동합니다. 그런데 그 활동이란, PC로 따진다면 ‘레지스트리 청소’, ‘휴지통 비우기’, ‘임시 파일 삭제’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미국 워싱턴대학교 신경생물학과 연구팀의 실험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인간과 비슷한 수면 활동을 취하는 초파리를 대상으로 뇌와 잠의 관계를 밝혔습니다. 잠든 동안 뇌는 불필요한 기억이 저장된 시냅스(뇌 신경세포 간의 정보 교류를 일으키는 부위)를 삭제하고, 초기화 상태의 신규 스냅스를 생성한다는 내용입니다. 숙면 뒤 머리가 맑아진 기분이 드는 것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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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 많고 고민 많은 우리 직장인들에게 숙면은 그리 간단히 이루어지는 게 아닌지도 모릅니다. 자장가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 큰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은데요. 이런 자장가를 그리워 하는 분들이라면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즉 ‘자율감각 쾌락반응’이라는 용어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뇌 자극을 통한 심리적 안정 유도 원리라고 하는데요. 유튜브에서 ASMR을 검색하면 다양한 관련 영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긋나긋한 속삭임, 차분히 부는 바람 소리, 사각사각 연필로 글씨 쓰는 소리 등, 청취자들에게 ‘기분 좋은 소름’을 돋게 하기 위한 갖가지 콘텐츠들이 제공됩니다. 해외에서 먼저 불면증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국내에도 ASMR 영상 전문 제작자들이 많아졌다고 해요. 


ASMR 제작자 해나(HENNA)의 영상 / 출처: 해나 유튜브 채널



  3. 뇌의 군살 빼기, 디지털 단식


스마트폰의 급속한 발전과 상용화는 우리 생활을 참 편리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예전엔 사람이 뇌와 손과 발을 움직여 하던 많은 일들을 이젠 손가락만 까딱하여(터치, 스와이프, 입력) 처리하게 된 것이죠. 이를테면 길 찾기, 자료 수집, 쇼핑, 각종 티켓 예매, 편지 쓰기, 계산 등등. 똑똑한 데다가 충실하기까지 한 개인 비서를 늘 손 안에 쥐고 있는 셈입니다. 


비서가 유능한 만큼, 고용인(?) 입장에서 겪게 되는 부작용도 있는데요. 현대인들의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이른바 ‘디지털 치매(digital dementia)’ 현상이 나타났다고 해요.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보다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감퇴했다는 내용인데요. ‘호모 스마트포누스(Homo Smartphonus)’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지도 오래됐습니다.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신인류의 면모를 표현한 말이나, 요즘은 ‘똑똑한 바보’라는 반어적 의미로도 쓰입니다. 뇌를 쓸 일이 줄었으니 왠지 우리 뇌는 더 편해지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불행히도 그 반대입니다. 스마트폰을 통한 반복적, 일방적 정보 습득의 행위는 사람의 좌뇌만을 자극한다고 해요. 즉, 창의성의 영역인 우뇌 발달을 막는 것이죠. 고정된 사고를 벗어나지 못 한 채, 우리 뇌는 그 틀 안에서 끝없이 바삐 움직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입니다. 



과도한 스마트폰 활용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현으로, 최근 ‘디지털 단식’이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고 해요.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와 유사한 개념입니다. 의도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인데요. 퇴근 후엔 스마트폰, 태블릿 기기 등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둔다거나, 데스크톱과 노트북 전원을 일정 시간 동안 빼놓는 등의 방법이 있습니다. 디지털과 최대한 거리를 두는 자신만의 ‘단식 프로그램’을 짜보는 건 어떨까요. 군살 쏙~ 빠진, 좌우 균형 잡힌 쿨한 뇌를 갖기 위해 말입니다. 


 

  4. 뇌 쉼을 위한 ‘만만한 독서’


형용사 ‘만만하다’는 ‘연하고 보드랍다’, ‘부담스럽거나 무서울 것이 없어 쉽게 다루거나 대할 만하다’라는 뜻입니다. 독서에 관해서라면, 후자보다는 전자 쪽의 의미에 더 정이 갑니다. 만만한 독서, 연하고 보드라운 독서. 어감부터 벌써 뇌가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 들지 않으세요? 



해마다 ‘직장인들의 필독서’라는 분류법에 의해 다량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소개가 됩니다. 왠지 투지를 발휘하여 정독해야 할 것만 같은데요. 물론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뇌가 지쳐 있는 상태라면 잠깐의 쉼을 챙긴 뒤에 읽는 편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뇌 쉼을 위한 ‘만만한 독서’ 목록입니다. 만만해야 하니까, 딱 세 권만- 



<안자이 미즈마루 -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러 책들을 함께 작업한 인물로도 유명하죠.)가 자신의 그림과 예술에 대해 쓴 에세이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산문이지만 글 분량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이라니, 말만 들어도 연하고 보드랍습니다. 


이미지 출처: 알라딘(이하 출처 동일)


"저는 뭔가를 깊이 생각해서 쓰고, 그리고 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면 '대충 한다' 고 바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대충 한 게 더 나은 사람도 있답니다. (···) 잔업은 질색이에요. 

밖이 어두워지면 하던 일을 멈추고 놀러 나갑니다."

책 속에서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인도의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저입니다. 정현종 시인이 번역을 했습니다. 철학서라기보다는 명상서에 가까운데요. 현대인들이 마주하는 여러 가지 감정들에 대해 조곤조곤 긍정해줍니다. 불안과 외로움마저도요. 아는 것, 알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디지털 시대,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메시지는 위안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공간과 침묵이 필요한 까닭은, 마음이 외롭고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고 

훈련되지 않고 무수히 잡다한 경험들로 가득 차 있지 않을 때에만 

마음이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연필 깎기의 정석 - 장인의 혼이 담긴 연필 깎기의 이론과 실제>

“뉴욕의 만화가이자 연필 깎기 장인인 데이비드 리스가 주어진 도구로 가장 완벽하게 연필을 깎는 법을 설명한다”라는 책 소개가 흥미롭습니다. 본문은 더 기발합니다. 연필 깎기를 위한 몸풀기 자세도 설명하고 있죠. 연필 하나 깎는데 뭐 이리 부산스럽나 싶어 웃음이 나다가도, 연필 깎기라는 다분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행위를 이렇듯 온몸으로 체험하고 나름의 룰까지 정리해 한 권의 단행본으로 엮은 장인정신(?)에 감동을 받게 됩니다. 이 사람의 뇌는 분명히 말랑말랑할 것이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일상성과 사소함이야말로, 딱딱해진 우리 뇌가 놓치고 있는 보물들 아니던가요. 



"연필 깎기가 그렇듯 살다 보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고,

그럴 땐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로 깎으면 되며,

완벽하게 깎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완벽에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건 비겁한 것임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으면 해요."

책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