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 갑니다] 오래된 모든 것이 아름답다

Story/효성

 

 

 

 

 

이효재의 이름 안에는 외국에서 전용기를 보내와 배움을 청할 정도로 전통 보자기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보자기 아티스트’라는 직함과 한복 짓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네 살 때부터 한복 실밥 묻은 삶을 살아온 ‘한복 디자이너’의 삶이 공존합니다. 지난해에는 어린이들에게 일상생활 속 전통의 가치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우리 생활 문화> 시리즈를 출간하며 동화책 작가로도 바쁘게 활동했지요. 그 대상이 한복이건 보자기건 책이건 “이제야 한국적인 것을 뽑아 쓸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효재는 “아름다움에 대한 경계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어루더듬었습니다.

 

 

이효재

 

 

“한복 디자이너 한복려 선생님이 57세가 되던 해에 ‘효재야, 이제 내가 뭐가 보인다’ 하셨어요. 제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저에게 전통은 자유로움이에요. 한복이 우리 것이어서 아름답고 최고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오래된 것들이 아름다워요. 치파오와 한복, 기모노는 각각 그 나라의 기후와 풍토, 민족성에 맞게 진화한 옷인 거죠. 그래서 전통은 진화된 아름다움이기도 해요.” 

 

 

 

 

나이가 벼슬이냐고 되묻지만, 효재에게 나이는 벼슬입니다. 24시간을 엄격하게 쓰고, 방석 넓이보다 작은 이불에서 쪽잠을 자고, 깨어 있을 때는 쉼 없이 몸을 움직이며 노동한 대가로 매일매일 얻는 값진 벼슬이지요.  

 

 “저는 바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요. 일상의 노동을 수행이라 여기는 것이 나의 최고인 점이지요. 그래서 매일 저에게 ‘잘 살았어’ 하고 훈장을 줘요.”  

 

 

 

 

 

 

효재에게 ‘살아 있다’는 것은 ‘사연이 있다’는 뜻입니다. ‘공산품을 사랑하는 이는 공산품의 사연을 갖게 되고, 자연을 사랑하면 친환경적인 사연을 갖게 된다’고 믿는데요. 조물조물 코바느질을 해서 레이스 옷을 입혀놓은 빗자루 하나, 빠진 머리카락을 들썽들썽 감아 만든 바늘 쌈지 하나 사연 없는 것이 없어서 모지랑이 살림살이를 대할 때도 마음이 달뜹니다.

 

 

 

 

“일상을 예술로 바꾸는 방법은 간단해요. 라면을 끓일 때 ‘어떻게 더?’를 고민해보는 겁니다. 그렇게 완성한 자신만의 라면에 이름도 지어주세요. 빵집에서 사온 봉지빵도 그냥 먹지 말고 살짝 데워 접시에 담아 먹어보세요. 함부로 먹지 않으면 함부로 살지 않게 돼요. 자연주의라는 것은 나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죠.” 

 

 

 

 

그녀가 일상을 이토록 지극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부잣집 딸로 태어나지 않았고, 부자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고, 부티 나는 연예인 얼굴이 아니어서”라고 말합니다. 삶에 ‘부(富)’ 자를 붙이려 하면 끝없는 빈곤이 이어지지만, ‘부’ 자를 떼버리니 부러운 일도, 부러운 사람도 없는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다며 웃음을 짓습니다. 

 

 

 

 

 

 

가래떡 구워 먹는 1월이 오면 그녀 역시 마음을 추스르고 시작하려는 마음이 움튼다고 하는데요. 변화하고 싶은 이, 혁신하고 싶은 이에게 효재는 “오늘 저녁에 집에 가면 양말 홀랑 뒤집어 벗는 습관부터 바꿔보라”는 당부를 합니다. 사소한 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용기가 생겨난다고 하는 그녀. 그래도 용기가 돋아나오지 않으면 “말을 바꿔보라”고 당부합니다. “글을 쓰듯 말을 하면 자신의 말을 귀로 듣고 심성이 바뀌고, 심성이 바뀌면 마음이 순화되어 운명이 달라진다”는 깨달음이지요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해요. 이유는 비가 올 때까지 기도하기 때문이지요. 꿈은 포기하지 않으면 현실이 돼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절대 권리 아닐까요? 인디언 속담 하나를 내 것으로 받아들여 눈을 홉뜨고 온몸으로 밀고 나가면 기적이 시작되는 거죠.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 안 되면 다시 계획을 세우고 다시 도전해보세요.”   

 

 

 

 

 

효재에게 기적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제천을 오며 가며 리솜포레스트에 자리한 천문대를 보고 “낮달이 떴네”, “달집에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는 그녀. 놀랍게도 올해 그 천문대를 요리 스튜디오로 활용하게 됐습니다. 스튜디오 이름도 ‘달(Moon)’이라 붙였다. “달집에서 충전한 에너지가 피로한 일상의 든든한 갑옷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효재는 2015년의 열두 달을 바쁘게 보낼 예정입니다. 

 

 

 

 

본디 ‘효재(齋齋)’라는 이름 안에는 ‘본받는 집’이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초근목피를 진수성찬으로 만들고, 척박한 자투리땅을 살피꽃밭으로 바꾸어놓는 효재의 솜씨는 ‘마술’이 아니라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 여기고 살림이라는 노동을 수행으로 받아들인 결과인데요. 꿈을 포기하지 않은 대가로 받아 든 삶의 선물입니다. ‘말이라는 화살 끝에 독을 묻히지 말라’,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거듭된 당부는 효성인에게 건네는, 효재라는 지극한 어른의 새해 덕담입니다.

 

 

 글 김경민(자유기고가) 사진 전문식(Day40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