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읽기] 이순신에게 사기(士氣)에 대해 묻다

Story/효성








이순신 리더십의 핵심은 그와 부하 사이에 깊은 믿음과 신뢰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엄격한 자기 절제, 공과 사를 구분하는 행동, 엄격함과 자애로움의 조화는 부하들에게 “저분을 내가 믿고 따를 수 있구나”라는 믿음과 신뢰를 심어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이순신은 자기성찰과 자기반성을 끊임없이 행하는 리더였습니다. 기념비적인 기록물인 <난중일기>의 의미를 되새겨봅시다.  


전선에서 일기를 꾸준히 쓰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이순신이 거의 매일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규칙적으로 성찰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일기 곳곳에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더 나은 행동을 위한 자신의 내적 성찰과 결심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리더는 부하들에게 확고한 믿음을 주고 그들의 충성심을 끌어낼 가능성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은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거의 비슷합니다. 나의 이익을 먼저 앞세우면 자연스럽게 무리한 방법들이 등장하게 되고 부하들의 마음은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부하들의 입장이 어떨까?” 혹은 “이런 조치를 취하면 백성들이 어떤 상황에 처할까?”를 먼저 생각하는 리더라면 부하와 백성들로부터 충성과 신망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순신과 관련된 한 가지 사례는 그가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보여주는 데 손색이 없습니다. 오늘날의 통영 초입에 위치한 견내량에서 벌어진 해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견내량 해전에서 이순신은 끝까지 왜군을 절멸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군을 전멸시키는 대가로 일부 살아남은 왜군이 육지에 상륙해서 인근의 백성을 유린하고 살해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순신이 우선으로 삼았던 것은 전투에서의 완벽한 승리가 아니라 백성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이었습니다. 리더의 마음 한편에 그가 이끄는 사람들의 안위와 후생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 마음은 부하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지게 됩니다. 구한말 교육자이자 한학자였던 정인보 선생은 이충무공기념비에서 “충무공은 명장보다 성자에 가깝다.”는 평가를 내린 적이 있습니다. 이순신이 혁혁한 공을 거둔 기초에는 덕(德)과 성(聖)이 있었는데, 오늘날의 의미로 새기면 훌륭한 품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전 그렇지 않아요”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시기심과 질투심에 필적할 정도로 강력한 인간 본성이 인정에 대한 욕구입니다. 이순신은 사람의 이 같은 본능적인 심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공을 세운 사람은 반드시 상을 받도록 해주고, 반면에 도망병이나 물자를 빼돌린 부하들은 가차 없이 처벌했습니다. 그는 한없이 자애로운 장수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부하를 처벌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병선 보수를 소홀히 하는 자, 직무를 태만히 하는 자, 군기를 문란하게 하는 자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처벌한 것입니다.  

1598년 녹도만호 송여종이 명나라 도독 진린과 함께 출전해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송여종 부대는 적선 6척을 노획하고 적 70명의 목을 베었습니다. 반면에 진린은 명나라 군이 전과가 없는 것을 부끄러워해 연회에 참석한 이순신에게 화를 내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이순신은 진린의 불편한 마음을 이해하고 “도독께서 이곳에 오시어 우리 군사를 통솔하니, 우리가 벤 적병의 목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도독께서는 명군이 거둔 전과를 보고하시기 바랍니다.”라며 격려했습니다. 이순신이 인정에 목마른 진린의 마음을 알아채고 욕구를 충족시켜준 것입니다. 한편 전공을 빼앗긴 송여종이 불평하자 이순신은 웃으면서 이렇게 달랬다. “왜적의 수급은 썩은 수급에 지나지 않으니, 명나라 사람에게 주는 게 무엇이 아까운가? 그대의 공은 내가 장계를 올려 조정에 보고하겠네.” 이처럼 이순신은 부하의 화를 달래는 데 격려와 칭찬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개인이나 집단은 한없이 풀어질 수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순신은 병사들의 사기가 가진 또 다른 측면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기는 또 다른 면에서 건강한 긴장감이나 패기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필생즉사, 사필생즉(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이라는 비전과 신념을 구성원들에게 주지시킴으로써 조직 전체가 팽팽한 긴장감을 안고 전쟁에 임하도록 독려했습니다. 명량해전에서 12척의 배로 왜군의 배 330척을 물리친 전공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이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죽기를 각오한 병사들의 충천한 사기였을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사람들이 모여서 가치 있는 것을 이루어나갑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사기를 충전하는 방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