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Talk]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윤호일 책임연구원

Story/효성




지구 남반구 최극단 ‘남극’을 떠올리면 새하얀 얼음 대륙과 펭귄 그리고 지구의 미래를 연구하는 세계 각국의 연대가 뒤따를지 모르지만 사실 남극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가장 춥다는 남극점은 최저 기온 영하 80℃로 2,000m 두께의 얼음에, 그나마 따뜻한 여름인 12월에서 2월의 기온은 무려 영하 11℃. 이렇듯 남극은 극한의 추위가 점령한 땅입니다. 


무시무시한 바람 블리자드가 불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언제 어디서 크레바스를 만날지 몰라 섣부른 외출은 금물입니다.  밖에 나가 뭔가 할 수 있는 날이 한 달에 나흘도 채 안 되는 곳에서 과연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우리나라 남극세종기지 대원들의 임무는 무엇일까요?





17차 남극세종기지 월동대장을 지내고 1993년부터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씩 20년 동안 남극을 다녀온 윤호일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간단명료하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라고! 예상 밖의 우스갯소리에 어리둥절한 청중을 향해 그는 “안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부연합니다. 


각종 표본을 채취해 분포하려고 늘 대기 중이지만 날씨 탓에 대개는 쉬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고 합니다. 그런 곳이라면 굳이 리더가 필요할까 의구심이 들지만 윤호일 연구원은 그럴수록 더욱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나가지 못하고 실내에 틀어박혀 지내면 사람이 이상해져요. 매 순간 인간의 한계를 확인하고 좌절하기 때문이죠. 그곳에서 모두 무사히 대한민국으로 귀환하도록 조직을 이끄는 게 남극의 리더가 할 일입니다.”  





<극한 상황에서의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하는 윤호일 책임연구원>



윤호일 연구원이 남극세종기지 월동대장으로 근무했던 2003년 12월부터 1년 동안은 잊지 못할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명문 대학과 특수 부대 출신의 대원 15명을 이끌고 온갖 위기를 겪으며 그는 이른바 ‘극한의 리더론’을 확립했습니다. 한번은 대원 중 하나가 동상에 걸려 괴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문명세계로 나가야 하는데 기상이 좋지 않아 비행이 취소되는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건 발가락을 자르는 일뿐이었습니다. 


4개월 뒤 대한민국에 들어가 발목을 자르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었으나 당사자를 설득하는 건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대장이기에 결단을 내렸습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모두에게 이로운 선택을 하고 그 책임을 기꺼이 감수하는 게 리더의 제1 수칙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게 이른바 ‘또라이 다루기’입니다. 쫓지 말고 방치하지도 말고 리더의 숙명이라 생각하고 안고 가려는 마음. 그것이 조직 내 ‘또라이’를 관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윤호일 연구원은 이야기합니다. 장점에 집중해서 끊임없이 인정하고 진심으로 걱정할 때 ‘또라이’는 물론 조직의 분위기마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더디 가더라도 죽지 않는 방법입니다. 모두가 살아서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윤호일 책임연구원의 강연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효성인들>



“진정으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카리스마도 아니고 완장도 아니에요. 극한 상황에서 다양한 성격과 학력과 전공과 수단을 경험했는데 결국 중요한 건 정직함이었어요.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그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조직을 추스르면 돼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이게 정직함입니다.”  





윤호일 연구원은 효성인에게 다시 한 번 원칙과 기본을 지켜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동요하는 부하를 잘 다독여 기본과 원칙을 되뇌어 하나의 목적인 ‘삶’만 생각하도록 이끌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법이라고. 혹시 ‘꼰대’가 되라는 거냐는 의구심은 단칼에 날려버립니다.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리더는 절대 ‘꼰대’가 아니라는 게 그의 지론입니다. 그들은 소통에 능하고 세상과 타협할 줄 압니다. 본질을 잊지 않고 책임을 다하는 따뜻한 휴머니스트. 설핏 보니 윤호일 연구원을 닮기도 했습니다.





  우승연(자유기고가) 사진 김원태(Day40 Studio) 협조 효성인력개발원 기업문화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