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보훈의 달 6월, 호국 보훈과 효성 이야기

Story/효성

 

호국 보훈의 달 6월, 호국 보훈과 효성 이야기


 

호국 보훈의 달 6월입니다. 효성 블로그 가족 여러분은 호국 보훈이라고 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시나요?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호국 보훈이라고 하면 막상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표적으로는 ‘국방의 의무’가 있겠지요. 하지만 국방의 의무도 아무나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체적, 정신적 자격이 갖춰져야만 수행할 수 있지요.


효성의 창업주 조홍제 회장은 ‘산업입국’의 정신으로 효성을 세웠습니다. 산업입국은 ‘산업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뜻입니다. 기업이 할 수 있는 호국 보훈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넓게 보면 건실한 기업의 존재 자체가 호국 보훈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경제를 성장시키고 안정시켜 나라를 튼튼하게 만드니까요.


효성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다양한 호국 보훈 사업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는 창업주인 조홍제 선대회장의 호국 보훈 정신을 이어받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조홍제 선대회장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호국 보훈을 실천했을까요?

 

 

한옥

 


조홍제 선대회장은 1906년 5월 20일,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생육신을 배출하기도 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만큼 강직한 정신과 학문을 숭상하는 가풍 가운데 자라났는데요. 나이가 참에 따라 열여섯의 나이로 서울로 상경하여 신학문을 배우게 됩니다.


이윽고 고등보통학교(지금의 중학교)에 열아홉이라는 늦은 나이로 입학하게 되었지만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하여 교내외의 행사 때마다 응원단장을 맡아 학생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학교 생활을 하던 중 1926년 4월 25일, 순종황제가 의문의 죽음을 맞자 당시의 학생 사회는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6∙10만세운동으로 일본 검사국 수감자 명단에 오른 조홍제 회장 (1926년 6월 19일 동아일보)

<6∙10만세운동으로 일본 검사국 수감자 명단에 오른 조홍제 회장 (1926년 6월 19일 동아일보)>

 

 

조홍제 회장 역시 역사의 물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평소 의협심과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가 높았던 조홍제 회장은 곧 학생들 사이에서 만세 운동의 주동자로 떠오르게 되고, 순종황제의 국장일을 기해 일어난 6.10 만세운동 당시 앞장서서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되고 맙니다.


조홍제 회장은 주모자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종로경찰서와 서대문형무소에서 수주일간 옥살이를 치러야 했습니다. 아직 학생의 신분임에도 독립을 향한 의지를 불태웠던 조홍제 회장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일화입니다.

 

또한 조홍제 회장의 호국 보훈 정신은 그 대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인 조석래 회장의 회고에 따르면 1945년 8월 15일 광복절,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라디오 방송을 듣고 아버지 조홍제 회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스코트랜드 민요인 ‘올드랭사인’에 맞춘 애국가를 가르쳐 준 일이라고 합니다.


선대회장의 정신은 교육을 통해 후대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셈입니다. 효성은 그러한 선대회장의 정신을 이어받아 지금까지도 다양한 호국 보훈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 몇 가지 사례를 여러분들께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피난처 보존

 

 

효성은 중국 저장성 자싱시에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의 피난처 보존과 임시정부 기념활동 지원을 위해 지원금을 전달한 바 있다

<효성은 중국 저장성 자싱시에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의 피난처 보존과 임시정부 기념활동 지원을 위해 지원금을 전달한 바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로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데요. 중국 저장성 자싱시(가흥)에는 김구 선생의 피난처가 있습니다. 김구 선생의 피난처는 2층짜리 목조 건물로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요인들이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일제의 추적을 피해 3년 6개월 간 머문 곳입니다. 효성 중국법인은 지난 2007년에 김구 선생의 피난처 보존과 임시정부 기념활동 지원을 위해 자싱시에 지원금을 전달한 바 있어요.

 

 

백범 김구 선생 일행의 피난용으로 쓰였던 배의 모습
<백범 김구 선생 일행의 피난용으로 쓰였던 배의 모습>

 

 

나라사랑 보금자리 사업

 

 

나라사랑 보금자리 후원금 전달

 <효성은 6월 2일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이상운 부회장(왼쪽에서 두 번째), 조현상 산업자재PG장(왼쪽에서 첫 번째), 모종화 육군 인사사령관(오른쪽에서 두 번째), 박춘상 제대군인 지원처장(오른쪽에서 첫 번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나라사랑 보금자리’ 기증식을 갖고 후원금 1억 원을 전달했다>

 


호국 보훈을 향한 효성의 노력은 그 뿐만이 아닙니다. 나라사랑 보금자리 사업은 육군본부가 2011년부터 6.25 참전 국가유공자 중 생활이 어려운 용사들을 돕기 위해 시작한 사업인데요. 효성은 작년(2013년)부터 이를 후원해 오고 있습니다. 참전용사 가운데 대상을 선정해 집을 새롭게 고쳐 줌으로써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사업입니다. 효성을 포함한 10여 개 기업과 육군, 지자체, 개인 등이 참여해 참전용사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나가고 있지요.

 


 현충원 참배

 <6월 2일 육군본부 정양우 예비역협력과장의 안내 하에 이상운 부회장(앞줄 왼쪽), 조현상 산업자재PG장(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장형옥 지원본부장(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은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해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한 참배를 진행했다>

 


올해에도 효성은 나라사랑 보금자리 사업 후원금을 전달하는 기증식을 갖고 후원금 1억 원을 전달했습니다. 기증식 후에는 경영진이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해 현충탑을 참배하며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을 기리고, 호국 보훈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6.25 참전 미국 퇴역군인에 대한 감사 행사

 

 

효성 USA, 2013년 6.25 참전용사 감사 행사 모습
<효성 USA, 2013년 6.25 참전용사 감사 행사 모습>

 

 

효성의 호국 보훈 사업은 머나먼 미국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9일,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에서는 6•25 참전 퇴역군인 및 가족에 대한 감사 행사가 열렸습니다. 효성의 사업장이 있는 이곳은 6•25 참전 퇴역군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올해 효성이 후원한 6∙25 전쟁 64주년 맞이 6∙25 참전 미국 퇴역군인 및 가족에 대한 감사 행사
<올해 효성이 후원한 6∙25 전쟁 64주년 맞이 6∙25 참전 미국 퇴역군인 및 가족에 대한 감사 행사>

 

 

이 행사는 효성이 후원한다고 하여 눈길을 끌었는데요. 사실 감사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13년에도 효성의 주최 하에 6•25 참전 미국 퇴역군인과 그 가족 30여 명을 초청해 감사 행사가 진행되었는데요. 이에 감명받은 앨라바마주 병참본부가 올해부터 공식 행사로 격상시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효성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곳에서 호국 보훈 사업을 펼치고 있답니다. 오늘날, 사회는 기업에게 경제활동 외에도 다양한 책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회공헌활동(CSR), 윤리 경영 등이 그것입니다. 국가가 있어야 기업도 있는 것이죠. 호국 보훈 사업 또한 기업의 책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효성의 호국 보훈 정신은 창업주 조홍제 선대회장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창업주의 정신이 살아 있는 한 효성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 정신을 펼쳐 나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