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권]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Story/효성



양력으로도 음력으로도 엄연히 해가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나이 한 살 더 먹었음을 유보할 수 없게 되어버렸는데요. 설 연휴 내내 괜스레 호젓해진 마음을 못내 가누지 못한 채 다시금 일상으로 내던져진 기분은 아니신가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타인들의 살가운 인사가, 올해도 ‘일복’ 듬뿍 안으시라는 소리로 곡해돼 들리지는 않으셨던가요. 새해라서 새롭게 새 출발을 해본다는 것은, 생각도 고민도 많은 직장인들에겐 그리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런 집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의 주인님은 오늘도 세상만사 다 꿰뚫어보는 듯한 현안을 맑게 빛내며 ‘갸르릉’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2016년 12월 31일과 2017년 1월 1일을 ‘지난해/새해’로 구분하는 집사들의 셈법을 진즉에 초월한 것 같은 저 표정. ‘지난해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해’, ‘하지만 새해에도 내 일상은 똑같잖아’, ‘나는 왜 이럴까’ 따위의 고뇌는 일찍이 초극해버리고,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의 따땃함에 자신의 뱃대기를 오롯이 맡길 줄 아는 저 여여함.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냥이 같기만 해도 왠지 마음의 온도가 지금보다는 올라가지 않을까···. 집사들은 그렇게 주인님을 극진히 모시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표지 이미지 / 출처: 알라딘



 묘하게 닮은 고양이의 세계 / 인간의 세계


고양이를 소재로 문학·역사학·철학, 즉 ‘문사철’을 이야기한 책 한 권을 소개해드립니다. 비평가이자 애묘인으로도 유명한 진중권이 쓴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입니다. 부제가 ‘지혜로운 집사가 되기 위한 지침서’인데요. 이 책은 각종 고문헌과 사적을 예시로 들며 고양이가 인류의 곁에서 존재해온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목차를 먼저 살펴볼까요?



1장 고양이의 역사학 

01 고양이의 창세기 / 02 고양이를 위해서라면 / 03 세일러문의 고양이들 / 04 성서에는 왜 고양이가 안 나오나 / 05 마녀의 검은 고양이 / 06 성 요한의 장작불 / 07 고양이 대학살 / 08 고양이, 시가 되다 / 09 임금님의 냥줍 / 10 요괴에서 마네키네코로 


2장 고양이의 문학 

01 가르릉 소리가 뜻하는 것은 / 02 하얀 고양이 판거 밴 / 03 고양이를 조심하라 / 04 고양이는 왜 장화를 신었을까 / 05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 / 06 거울이라는 이름의 고양이 / 07 고자질쟁이 토버모리 / 08 검은 고양이 / 09 고양이 없는 웃음이란 / 10 고양이 이름 짓기 


3장 고양이의 철학 

01 내가 고양이와 놀 때에 / 02 동물이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한 / 03 쇼펜하우어의 고양이 / 04 레비나스의 개와 데리다의 고양이 / 05 고양이-되기



1장과 2장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문학작품 안에서 고양이가 겪어온 다사다난한 일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습니다. 인간 못지않게 고양이들도 참 모진 풍파를 겪어왔음을 배우게 되는군요. 고양이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묘하게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인식은, 3장에 접어들면서 철학적 개념들과 더불어 고양이와 인간 두 종(種)을 사유하는 쪽으로 확장됩니다.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이 책이 진짜로 향하고 있는 지점은 인간사에 대한 폭넓은 사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혜로운 집사가 되기 위한 지침서’라는 부제는 결국 ‘지혜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지침서’이기도 한 셈입니다. 


 



 인간에게 더 이로울 ‘고양이중심주의’



예를 들어 우리의 눈은 인간이 못 보는 자외선도 보고, 우리의 귀는 인간보다 1.6옥타브 더 높이 듣고, 우리의 코는 인간보다 14배나 풍부하게 냄새를 맡아. 게다가 야콥슨 기관까지 있어 입으로도 냄새를 맡거든. 감각기관이 다르면 세계도 다르게 주어지는 거야. 그러니 우리가 같은 ‘공간’에 산다고 같은 ‘세계’에 산다고 착각하지 마.
_본문 중 



어이쿠, 큰 실수를 했습니다. 앞 단락에서 ‘고양이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묘하게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라고 썼는데요. 좀 더 정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네요. 자, 고양이님, 진정하시고요, 고양이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완전히 ‘같다’라는 게 아니고, 그저 미욱한 인간의 시선에서 봤을 때 ‘비슷하다’라는 겁니다. 하핫···. 


위 인용문은 이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고양이중심주의 선언’이라는 글의 일부입니다. 이 글은 저자가 모시고 있는 고양이 ‘루비’의 발언이기도 한데요. 고양이에 대한 태도를 고쳐 잡게 만드는 뜨끔함이 문장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 집사는 자기를 ‘아빠’라 부르던데, 내가 어디를 봐서 자기를 닮았나. (···) 서로 종이 다른데 굳이 자기를 ‘아빠’라 부르는 것은, 다른 세계에 속한 존재까지도 억지로 자기들 세계에 편입시키려 드는 종족 특유의 버릇 때문이겠지. 베이컨이 말한 ‘종족의 우상’이라고 할까?

_본문 중



화자인 루비는 또 가라사대, “타자를 타자로 인정하지 못하고 꼭 ‘인간화’해버려야 성이 차는 버릇, 그걸 철학에서는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라고 하지 아마?”라고 짚어주시면서 “이 낡은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집사 문화에 새로이 ‘고양이중심주의(felinocentrism)’를 확립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집사인 저자에게 이 책을 받아 적게 만든 목적이라고 친히 상술해주십니다. 


 

내 발에 키스하라, 집사여-



자, 이쯤 되면 집사 생활을 하고 계신 분이든, 그렇지 않은 분이든 고양이들이 달리 보이실 테죠? 시선의 전환은 곧 사고의 전환이기도 합니다. 세상 보는 시각이 이전보다 더 넓어지거나 깊어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죠.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라는 책 한 권과 함께 여러분도 고양이중심주의자가 돼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