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권] 단테의 신곡

Story/효성



어느덧 다섯 번째를 맞이한 ‘한 달에 한 권’ 시리즈입니다. 2016년 마지막 달에 소개해드릴 작품은 올 1월 출간된 <단테의 신곡>(다니구치 에리야 엮음, 양억관 옮김, 황금부엉이)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책으로서는 다소 무겁다고 느껴지실 수도 있을 텐데요. 하지만 지옥편(Inferno), 연옥편(Purgatorio), 천국편(Paradiso)으로 나뉜 <신곡>의 상승형 구조는 한 해의 끝자락에 선 우리에게 한 줄기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나 힘든 일 년을 보내고 얼마간 지쳐 있는 분들이라면, 그 감동이 더욱 클 것 같습니다. 


 

출처: 알라딘



 방대한 원전이 부담스럽다면


<신곡>은 중세 유럽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알리기에리 단테의 명작이자 불멸의 고전으로 불립니다.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 같은 목록에 절대 빠지지 않는 작품이죠. 국내 여러 출판사들을 통해 다양한 번역본이 출간돼 있는데요. 그런데 그 분량이 워낙 상당한지라, 완독하는 데 꽤 긴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2005년 어느 출판사가 선보인 완역본은 무려 968쪽에 달합니다. 출퇴근길과 주말에야 겨우 독서할 짬을 갖는 직장인들에겐 결코 만만한 양이 아니죠. 



<단테의 신곡>은 바쁜 현대인들이 비교적 쉽게 일독할 수 있도록 원전을 재구성한 책이에요. 14세기 때 집필된 방대한 원작을 독파하기 부담스러우시다면, 이 책을 통해 <신곡>의 세계로 입문해보시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아래 두 가지 특징을 미리 알아두신다면 읽는 맛이 더해질 거예요. 


① 형식도 분량도 장편소설 한 권 

<신곡>은 총 14,233행의 서사시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양도 양이지만, 이탈리아의 대시인 단테가 쓴 비유와 상징들을 시어 하나하나 음미해보는 일이 문학도가 아니라면 조금은 버거울 수 있습니다. <단테의 신곡>을 엮은 다니구치 에리야는 아마도 이 점을 중요히 고려했던 듯합니다. 그는 원작자 단테의 대서사시를 300쪽이 못 되는 264쪽 분량으로 요약했는데요. 편집의 핵심은 시에서 산문으로의 변환입니다. 주인공 단테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 형식을 취한 것이죠. ‘나’라는 주어가 등장하는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말입니다. 따라서 독자들은 마치 장편소설을 읽듯, 큰 무리 없이 글줄을 따라 단테의 기기묘묘한 여정에 동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② 고풍스러운 일러스트의 품격

고전 <신곡>을 불과 장편소설 한 권치로 줄이는 만큼, 편집 과정에서 대단한 고민이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자칫하다가는 원작의 품위를 떨어뜨리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것은, 구스타브 도레(Gustave Dore)라는 거장의 일러스트가 120점 이상 풍부히 삽입된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반 고흐가 19세기 최고의 민중화가라 격찬했다는 이 작가의 우아하면서도 묵시록적인 삽화는 <신곡>의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재현해줍니다. 지옥편에선 암담함이, 연옥편에선 처연함이, 그리고 마지막 장 천국편에서는 환희의 감정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그림과 더불어 단테의 여정은 보다 선명히 독자들의 뇌리에 그려지죠. 




 용감히, 희망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내 속의 뜨거운 뭔가가, 저편에서 하얗게 빛나는 장미와 조응한다. 춤을 추듯 거침없이 빛의 사다리를 오르면서, 나는 완벽하게 자유로웠다. 

  베아트리체가 곁에 있었다. 

  그녀는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빛 속에 있었다. 


_<단테의 신곡> 본문 중(천국편 대미)


단테는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신곡>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13세기 중반의 이탈리아는 황제파와 교황파 간의 당파 싸움이 치열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교황파가 정권을 차지하면서 황제파였던 단테는 피렌체 시에서 추방당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합니다. 그때가 그의 나이 35세였죠.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야말로 한창나이에 큰 시련을 겪은 것입니다.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으로의 사후세계 여정을 그리고 있으나, 그 안에는 중세 유럽의 문학과 철학, 신학, 과학 등이 집대성돼 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현실이 아닌 저승이라는 점은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필멸이 아닌 불멸의 가치를 꿈꿨을 지식인 단테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죠. 



고된 일을 겪을 때 우리는 ‘힘들어 죽겠다’라고 표현합니다. 죽음에 비유할 만큼 지치고 무기력하다는 뜻일 겁니다. <신곡>을 빗대자면 지옥편과 연옥편에 해당하는 과정이랄까요. 지옥과 연옥을 지나며 삶의 고통과 애달픔을 맛본 단테는, 결국 환한 빛의 세계인 천국을 만끽합니다. 그러고는 “나는 완벽하게 자유로웠다”, “나는 빛 속에 있었다”라고 말하죠. 이야기 속 단테가 그러했듯, 우리 모두의 삶에도 ‘빛’과 같은 순간이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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