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을 통해 돌아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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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는 시원하게 보내셨나요? 저는 이번 다섯 번째 글로 효성 블로그 필진 활동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무더웠던 하계 시즌 동안 업무 보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들 각자 맡은 분야에서 건승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미치 앨봄의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은 읽은 지 10분 만에 저를 푹 빠져들게 만든 작품입니다. (제게도 이렇게 강한 흡입력의 대중 소설을 쓸 능력이 있었다면 진로가 완전히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작가의 필력과 통찰력이 훌륭한 책인데요. 작가는 자신의 삼촌 ‘에디’를 모델로 삼아 ‘이 세상에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10년 전, 제가 살던 해양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는 터(부산 영도구)는 본래 갯벌 매립지였습니다. 그 터에 대행업체가 임시적으로 놀이공원을 개장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살던 아파트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면 대관람차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게 보였죠. 그런데 어느 날 설치 문제로 인해 대관람차의 일부가 떨어지는 대형사고가 터졌습니다. 할아버지와 손녀를 포함한 많은 손님이 다치게 된 대형 사고라 뉴스와 신문에도 보도되었죠.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역시 제가 겪었던 사건과 비슷한 이야기가 발단이 됩니다. 주인공 ‘에디’는 놀이공원의 정비사입니다. 그는 하얗게 센 머리에 땅딸막한 체구, 굵은 팔뚝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리는 가늘고 한쪽 다리는 관절염을 앓고 있어서 늘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죠. 놀이기구가 한 소녀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순간, 달릴 수도 없는 무릎으로 소녀를 위해 몸을 내던집니다. 이 죽음을 시작으로 이야기의 무대는 천국으로 옮겨집니다.  


작가가 그린 천국은 에디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과 영향을 주고받았고 그의 삶이 이어지도록 힘썼던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는 곳입니다. 그들과의 만남은 누군가가 잘못을 했고, 그에 대해 벌을 받는 식의 인과응보, 혹은 권선징악의 만남이 아닙니다. 에디는 길을 지나며 삶을 되돌아보고, 용서하고, 이해하며 점차 치유 받습니다. 소설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시작되지만, 독자들이 책을 덮을 즈음에는 그의 죽음이 곧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국어판 책에 ‘모든 마지막은 시작이다.’라는 서문이 나와 있고, 원서의 첫 챕터 제목이 ‘The End’인 것에는 작가의 이러한 의도가 담겨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장에서 작가는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사람은 다시 그 옆의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세상의 사연들이 가득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결국 하나라는 것을."이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타인은 아직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일 뿐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인문학적 통찰력은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작가의 생각과는 또 다른 저의 생각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과 아래 김춘수의 시 '꽃'을 통해서 말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中


 

사람 사이의 관계는 보이지 않는 진실에 의해 이어지기보다는 각자에게 필요한 의미대로 대상을 바라보는 데에서 생겨납니다. 상대에게 자신이 바라는 의미대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크기 때문이죠. 마주치는 인연에 어떠한 감정과 의미를 던지지 않는다면 타인은 그저 지나가는 사람일 따름입니다. 


회사에서 마주치는 모든 이들과의 겪었던 일들을 소설로 써본다 해도 제가 그들에게 갖는 관심에 의미가 없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눈요기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삶에서 모든 인연에 진정성이 없다면 떨어지는 낙엽처럼 우연에 불과합니다.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모든 인연에 의미를 두는 것은 불필요한 친절에 불과하거나 귀찮기만 한 것이 사실 인간 본연의 모습입니다. 타인의 죽음도 내가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그저 하나의 사건에 불과할 뿐입니다.


카뮈의 <이방인>을 번역하기도 했던 최수철씨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만 줄이고자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나는 당연히 그래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달리 말하면 나는 그 누구보다도 솔직한 사람이다. 생각해보라. 이렇듯 도덕과 관습의 강력한 지배를 받는 세상에서 솔직하게 사는 게 오히려 훨씬 더 힘들고 번거롭고, 그야말로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대로 나는 내 몸이 요구하는 대로,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솔직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중략)


타인들의 관계에서 그들과 자기를 구별 짓는 것으로 간신히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고 싶은 것이다. 

                                

      <이방인>의 역자 최수철 '뫼르소가 말하는 뫼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