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메컵부터 펠레의 저주까지, 월드컵 비하인드 스토리

Story/효성




전 세계가 기다리고 고대하던 축구 축제가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 약 한 달 동안 울고 웃는 감동의 대서사시가 펼쳐질 텐데요. 사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생방송 드라마라고 봐도 무리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특히나 월드컵은 전 세계인의 축제로 약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개최되면서 수백 권의 책을 써도 모자란 이야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축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푹 빠질 수밖에 월드컵! 오늘은 우리가 모르는 월드컵 이면에 숨겨진 보물 같은 이야기들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하나. 맨발로 걷어찬 월드컵 진출


 

아시아지역에서 월드컵에 진출한 나라는 많지 않다



아시아지역에서 월드컵에 진출한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아시아 축구 강국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월드컵 문턱도 넘지 못했는데요. 그런데 그 월드컵에 진출자격을 획득하고도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 나라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인도입니다. 


195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대표 출전권을 획득한 인도는 월드컵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기권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맨발로 축구를 할 수 없다는 FIFA 규정 때문. 모든 선수가 맨발로 연습하며 월드컵에도 맨발로 뛰겠다고 주장했지만, FIFA는 이 요구를 거부합니다. 결국, 인도는 기권했는데 그 이후 단 한 번도 본선 진출을 한 적이 없답니다. 인도에겐 참 뼈아픈 추억이겠죠?



둘. 영원히 사라진 월드컵 트로피



줄리메 컵

<줄리메 컵, 출처 : 위키백과>



줄리메 컵을 아시나요? 1930년 월드컵이 창설된 뒤부터 1970년대까지 월드컵 우승국에 주어진 황금 트로피의 이름이 바로 줄리메 컵입니다. 월드컵의 창시자 줄 리메 피파 전 회장의 이름을 딴 이 줄리메 컵은 전 대회 우승국이 가지고 있다가 다음 대회 우승국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딱 한 개만 존재했습니다. 만약 한 국가가 3회 우승을 하면 트로피를 영구 소유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는데요. 1970년 브라질이 월드컵 3회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영구 소유권을 획득했죠.


이 줄리메 컵은 다사다난한 인생을 보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 트로피의 소유국은 이탈리아였는데요. 나치가 이 트로피에 눈독을 들인다는 소식을 접한 당시 이탈리아 축구협회 회장 오토리노 바라시는 로마 은행에서 보관 중이던 트로피를 찾아 자신의 침대 밑 신발 상자에 숨겨놓았습니다. 1966년에는 잉글랜드 월드컵을 앞두고 일반인에게 전시되었다가 도난당했는데, 도난 7일 뒤에 어느 교외의 정원 울타리 밑에서 신문지에 덮인 채 발견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 후 1970년 브라질이 월드컵 3회 우승을 달성하고 나서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축구협회에 보관되었는데요. 


그렇게 무사할 줄만 알았던 줄리메 컵이 1983년 또다시 도난당했습니다. 그리고 영영 줄리메 컵은 사라지고 말았죠. 당시 범인으로 지목된 4명의 용의자가 유죄를 선고받기는 했지만, 트로피 행방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일설에서는 트로피를 녹여 팔았다고도 하고, 영국에서 만든 복제품이 실제로는 진품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진실은 영영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셋. 장관이 감독이 되다



아프리카 지도

 


1974년 서독 월드컵 당시 콩고민주공화국의 전신인 자이르가 아프리카 대륙 대표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당시 자이르는 조별리그 제1라운드에서 브라질, 유고슬라비아, 스코틀랜드 등 쟁쟁한 축구 강국이 함께 한 조에 편성됐었는데요. 첫 경기에서 스코틀랜드에서 2:0으로 진 뒤 두 번째 유고슬라비아와 일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자이르 감독은 유고슬라비아 출신 비디치. 황당하게도 자이르 체육부 장관이 상대 팀 출신 감독을 믿을 수 없다며 감독을 해고해버립니다. 그리고 그 빈 감독자리에 장관 본인이 앉게 됩니다. 이 모든 건 당시 자이르 독재자 모부투의 명령. 


뭐 결과야 뻔하죠. 전반 초반에 3골을 허용한 자이르. 장관은 궁여지책으로 골키퍼를 교체해보지만 3분 만에 다시 실점하게 됩니다. 결국, 9:0이라는 최다 골 패배기록을 세우며 전설 같은 이야기를 남겨두었답니다. 


장관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독재자 모부투는 긴급 전문을 보냅니다. 


“체육부 장관을 감독직에서 해임한다.”



넷. 자책골이 목숨을 앗아가다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안드레스 에스코바르(1967~1994), 출처 : 위키백과>



자책골 하나로 목숨을 잃은 선수 한 명이 있습니다. 바로 15회 월드컵 콜롬비아 대표팀이었던 ‘에스코바르’ 선수. 콜롬비아 대표팀의 두 번째 예선 경기였던 미국 전에서 상대 선수가 슛한 공을 걷어내려다 오히려 콜롬비아 골문 안으로 밀어 넣게 됐습니다. 콜롬비아 대표팀은 최종적으로 1승 2패, 조 4위가 되어 본선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도박 조직에 의해 결국 목숨을 잃는다



당시 강력한 우승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콜롬비아는 축구 팬들의 강력한 비난을 받게 됩니다. 당연히 그 비난의 중심에는 에스코바르 선수가 있었습니다. 에스코바르는 다수의 도박 조직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당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위협은 행동으로 이어졌는데요. 한 괴한이 에스코바르에게 총격을 가했고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습니다. 일설에서는 에스코바르 선수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움베르토 무뇨스 카스트로는 콜롬비아의 승리에 큰돈을 건 거부의 의뢰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는군요.


축제의 장인 월드컵이 핏빛으로 물든 안타까운 역사가 됐습니다.



다섯. 최고의 선수에서 흑마법사로


 

펠레의 저주

<브라질 축구영웅 펠레(1940~), 출처 : 위키백과>


 

전설적인 브라질 축구선수 펠레. 펠레는 그 축구 실력만큼이나 ‘저주’로 유명한데요. 펠레가 예상한 일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저주’로 풀어낸 일종의 우스갯소리입니다. 그런데 마냥 웃고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쌓인 사례들이 워낙 굵직하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브라질 월드컵 대표 선수로 출전한 펠레는 당시 우승을 위해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우승컵인 쥘 리메 컵이 브라질의 영광을 지켜줄 것이라는 호언장담을 합니다. 그러나 펠레는 태클로 인해 부상당한 뒤 1년간 선수 생활을 못 하고, 브라질은 1라운드 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하죠.


그 이후 펠레의 저주는 계속되는데요.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우승할 거란 예상을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8강에서 탈락,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독일과 페루의 선전을 예상하지만 두 팀 모두 8강 탈락,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콜롬비아가 우승 후보 1순위, 독일의 2연패 가능성도 높다고 했지만, 콜롬비아는 1라운드 탈락하고 독일도 8강에서 탈락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이것 말고도 매우 많습니다. 가까운 예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모국인 브라질이 1라운드도 통과하지 못하고 탈락할 거라 말했지만 실제로는 우승을 해버렸죠.


이런 얘기야 너무 광범위해 누구라도 말할 수 있겠지만 세세한 부분을 보면 소름이 돋습니다. 2002년 스페인 국가대표였던 디에고 트리스탄을 최고의 선수라고 칭하지만 그 후 부상과 함께 축구선수로 쇠락의 길을 걷습니다. 유로 2008에서는 라울이 있는 스페인이 우승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는데 라울은 참가하지 않았고 스페인을 우승하게 됩니다.



펠레의 저주는 축구 외의 분야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2013년에는 종합격투기에서 7년간 무패를 기록하는 챔피언이었던 앤더슨 실바의 뺨을 때리는 CF를 찍었는데 그 후 앤더슨 실바가 격투 인생 최초로 KO패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재미로 모아놓은 이야기지만, 그게 쌓이고 쌓여 가볍지 않은 무게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번 월드컵에서도 펠레는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한다고 말했는데. 과연 어떻게 될까요?


승패를 떠나서 이번 여름에는 어떤 감동 스토리가 생길지 사뭇 기대됩니다. 새벽에 잠 못 이루며 삼삼오오 모여 앉아 혹은 길거리로 뛰쳐나가 다 함께 응원하는 열광의 물결 속에서 조금 더 행복한 한 달이 됐으면 좋겠네요. My Friend 효성과 함께 승리의 함성을 외쳐볼까요? 대! 한! 민! 국!